매일신문

[독자 참여마당] 우리가족 이야기-가장 더웠던 여름, 가장 성숙했던 그때

엄마에겐 그냥 공부하러 도서실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어김없이 시간이 되면 집을 나섰습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마음 편히 학교 다니는 게 부끄러웠던 저는 어떻게든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무작정 신문배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첫 여름방학!

150부가 넘는 신문을 수레에 싣고 그냥 걷기에도 턱까지 숨이 차오르는 언덕을 한여름에 오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땀은 비 오듯 흘렀고 몸은 자꾸만 땅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죠. 하지만, 엄마 아빠의 모습을 생각하며 고비 고비를 참아 잘 넘겼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요령도 생기면서 처음만큼은 어렵지 않더라고요. 신문배달이 가장 힘든 것은 무거운 신문을 끄는 일도, 태양의 따가움도 아닌 바로 '신문 사절'이라는 집에 신문을 넣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문을 조심스레 내려놓기가 무섭게 무작정 달려야 했지요. 어쩌다 주인과 마주하게 되면 큰 곤욕을 치러야 함을 알았기에 까치발을 하고 현관입구에 넣자마자 마구 뛰었습니다.

그러다 현장에서 잡히는 날에는 큰 꾸중을 들어야 했는데…. 한 아주머니는 신문을 담고 있던 수레를 밀어뜨리더니 "왜 사절이라는데 계속 신문을 넣느냐"며 신문으로 머리를 치시기도 하셨고, 한 번만 더 넣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시는 분들도 계셨죠. 그럴 때마다 눈물이 났습니다. 처음 겪는 모욕에 너무도 서러웠지요.

방학도 이제 얼마 남지 않는 날, 드디어 그동안 일한 대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내가 일해서 번 돈. 몸은 비 맞은 듯 땀으로 젖어 있었고, 몇 시간을 뛰어다녀 다리가 풀린 상태였지만 마음만은 즐거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실장님께 큰절을 하곤 주머니 깊은 곳에 돈을 잘 넣고 숨이 멈춰라 집으로 뛰었습니다. 맨날 보는 하늘인데 그날따라 하늘은 더 높았고, 공기는 왜 그리 맑은지 펄펄 날아다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저는 설거지를 하는 엄마를 뒤에서 꼭 안았습니다. 그리고 내민 만 원짜리 7장.

14살인 내가 그동안 신문배달을 해서 번 돈이라고 말씀드리니 엄마는 잠시 놀라시는 듯했지만, "다 컸네, 엄마 생각해서 일도 하고 말이야"라며 기특해 하셨습니다. 이제껏 삼십여 년을 살면서 온몸에 땀띠가 나도록 더웠던 여름을 꼽으라면 그때가 떠오릅니다.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때이기도 합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무조건 달렸던 그때처럼 전 오늘도 내일을 기약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네요!

전병태(대구 달성군 다사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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