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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접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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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고 황량한 밭가에/ 寂寞荒田側

가지가 무겁도록 화려한 꽃 달렸네/ 繁花壓柔枝

봄장마 그치니 가볍게 향기 날고/ 香輕梅雨歇

초여름 바람 타고 그림자 한들대네/ 影帶麥風欹

수레나 말 탄 귀인 누가 와서 보겠는가/ 車馬誰見賞

벌이나 나비만이 한갓 서로 엿본다네/ 蜂蝶徒相窺

태어난 땅 천한 것 스스로 부끄러워/ 自慙生地賤

사람들 버려 둔 것 원망할 수 있으리오/ 堪恨人棄遺

이 시는 신라시대 최치원이 쓴 '접시꽃[촉규화(蜀葵花)]'라는 시이다. 이 시는 세상이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탄식을 노래한 것으로 수능 모의고사나 여러 시험에 자주 출제될 정도로 유명한 시이다. 그런데 이 시는 책이나 시험마다 번역이 제각각이고, 또 이치에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그 이유는 3행의 두 번째 한자가 15세기 왕명에 의해 편찬된 『동문선』에는 '가벼울 輕'으로 되어 있지만 1920년대 최면식 선생이 간행한 『고운선생문집』에는 '지날 經'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운선생문집』을 기준으로 사람들은 '향기가 지나고', '향기가 시들해지고'와 같이 번역을 한다. 4행의 경우는 '보리 바람을 띠어 그림자 쓰러졌네'라는 양주동 선생의 번역을 많이 쓰지만, 중고등학교에서 향가를 배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듯 양주동 선생의 번역은 번역이 더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들은 실제 접시꽃을 보았을 때의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아침저녁 신천동로를 타고 출퇴근을 하다 보면 길가의 잡초들 사이에 핀 화려한 꽃들이 보이는데, 이 꽃들이 바로 접시꽃이다.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우고 한들대는 모습을 보면 잡초들 사이에는 있기 아까운 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우즈베키스탄에 미인이 많다는 것을 우스갯소리로 김태희가 밭 매고 있다는 소리를 하는데, 접시꽃을 보면 밭 매고 있는 김태희처럼 아름답지만 왠지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접시꽃의 느낌은 바로 그런 것이다. 만약 '향기가 시들해지고'나 '그림자가 쓰러진' 매우 처량한 모습이라면 '수레나 말 탄 귀인'이 봐 줄 필요도 없으며, 봐 주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고 탄식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위의 시는 우리 학교 김용환 선생님이 이런 문제점들을 바로잡아 새로 번역한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 접시꽃이 졌지만 내년 초여름에는 들판에 핀 접시꽃을 보며 신라시대 최치원이 접시꽃을 대하던 심정을 상상해보거나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도종환 시인이 불치병에 걸린 아내에게 말한 '접시꽃 같은 당신'이 어떤 느낌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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