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래된 멋, 새로운 문화…全州의 재발견

포근한 한옥마을에서 하룻밤, 주말에는 다양한 길놀이 공연

한옥에서 하룻밤을 묵으면 밤에 보는 한옥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한옥에서 하룻밤을 묵으면 밤에 보는 한옥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남부시장 청년몰 풍경. 개성이 뚜렷한 작은 가게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
남부시장 청년몰 풍경. 개성이 뚜렷한 작은 가게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
한옥마을에서 맛보는 길거리 음식. 임실치즈구이, 곰발바닥 아이스크림, 크림치즈 추로스. 긴 줄을 기다려야 맛볼 수 있다.
한옥마을에서 맛보는 길거리 음식. 임실치즈구이, 곰발바닥 아이스크림, 크림치즈 추로스. 긴 줄을 기다려야 맛볼 수 있다.

전주 여행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봐야 할 곳도, 먹어야 할 음식도, 즐겨야 할 놀거리도 넘쳐난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 고심 끝에 전주의 오래된 멋과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기로 선택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하는 작은 매력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8월의 마지막 주말, 뜨는 관광지인 만큼 전주에는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모였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낮은 한옥의 담장 덕분에 더 높아진 전주의 가을 하늘 아래,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하는 작은 기쁨들은 무엇이었을까.

◆세월이 흘러도 아름다운 것들

한옥마을은 전주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눈높이 정도의 낮은 한옥 담장들,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진 한옥의 아름다움은 아담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한옥마을에 들어서면 무작정 걷고 싶어진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한옥마을의 매력 덕분이다. 한옥마을은 전주시 완산군의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서 민족적 자긍심이 한옥으로 꽃피워진 곳이다. 1930년을 전후로 세력을 확장하는 일본인에 맞서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에까지 이르렀다.

다양한 볼거리들은 한옥마을 산책에 즐거움을 더한다. 그중 하나가 매주 토요일 열리는 합굿마을의 길놀이 공연 '화룡'이다. 합굿은 '여러 마을이 모여 함께 굿을 연주한다'는 의미다. 길놀이답게 흥겨운 풍물패들의 악기 연주는 관광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선두에 있는 기수의 재주가 공연의 하이라이트다. 큰 깃발을 사람들 위로 흔들며 머리에 닿을 듯,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한다. 합굿마을의 공연은 풍요로운 한가위를 앞두고 잔치가 열린 마을을 연상케 한다.

한옥마을은 따로 입장 시간과 입장료가 없지만 '경기전'에 들어가려면 시간에 맞춰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야 한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 즉 초상화가 모셔진 곳이라 그런지 경기전에 들어가면 흥겨웠던 마음도 엄숙하게 가라앉는다. "당시 화공들은 초상화에서 혼이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으로 용안을 그려야 했다"는 문화해설사의 설명 때문일까. 어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선 건국 당시 태조의 기상이 느껴지기도 한다.

◆전주의 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오목대로 향했다. 오목대는 풍남동에 위치한 작은 언덕이다. 5분 정도 걸으면 정상에 도착할 만큼 나지막한 언덕이지만 정상에서는 한옥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목대는 높은 건물이 없는 한옥마을의 '전망대'인 셈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자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야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넓은 정자 위는 시간이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옥마을이 드러내는 소박한 야경에 평소보다 더 진솔해지는 시간이 되는 것 같았다.

다시 한옥마을로 돌아와 이번에는 길거리 야식을 즐겼다. 전주는 다양한 '길거리 음식'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길거리 음식=불량식품'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주의 길거리 음식은 고급화와 차별화에 성공해 남녀노소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각종 크림이 들어 있는 추로스. 신기한 재료들로 만든 아이스크림, 임실 치즈로 만든 치즈구이 등 종류도 다양하다. 길거리 음식을 맛보려면 낮에는 긴 줄을 기다려야 하니 해가 지고 비교적 사람이 없을 때 여러 종류의 길거리 음식들을 맘껏 즐겨보자.

전주의 밤, '한옥 체험'도 빼놓을 수 없다. 한옥에서의 하룻밤은 처음이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맨발에 닿는 나무의 따뜻함이 한옥에 금방 익숙해질 수 있는 이유였다. 전주에는 종류도, 특색도 다양한 한옥 게스트하우스들이 있으니 취향대로 골라서 묵으면 되겠다.

◆전주의 새로운 문화

전통적인 공간이 아닌,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곳도 있다. 젊은 사람들의 놀이터로 자리 잡은 '남부시장 청년몰'이다. 전동 3가 남부시장 2층에 자리한 청년몰은 입구에서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적당히 벌어 잘 살자'라는 팻말이 말하듯, 청년몰을 구경하고 있으면 '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묻게 된다.

남부시장 청년몰은 2011년부터 사회적기업 '이음'과 함께 남부시장 안의 빈 공간을 재정비해 청년들에게 창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문전성시 프로젝트'로 진행돼 왔다. 그 결과 25개의 청년점포가 남부시장 2층에서 성업 중이다.

'없는 게 없는 곳'이 전통시장이라지만 청년몰은 없는 게 더 많은 곳이다. 그럼에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유는 청년몰에서만 볼 수 있는 물건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종이 엽서 하나도 범상치 않다. 엽서 안에 씨앗이 들어 있어 엽서를 물이 담긴 그릇에 올려두면 싹이 트는 수제 엽서다. 이 외에도 다양한 레시피의 맥주 칵테일 집, 여행 상담을 해주는 가게 등 아이템은 끝이 없어 보인다.

청년몰의 또 다른 매력은 '직설적인 화법'에 있다. 보리밥 전문집의 이름은 '순자씨 밥 줘'다. 오랜 단골들이 주인장을 부를 때의 소리를 그대로 가게 이름으로 썼다. 이색적인 가게 이름과 고령의 주인장 손맛이 쌀밥 세대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전통 디자인 소품을 파는 가게 '새새미'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오빠가 백(bag)은 못 사줘도 주머니는 사줄 수 있어.' 재치 있지만 동시에 직설적인 말 한마디에 사람들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남부시장 청년몰은 비현실적인 공간이었다. '시장을 형성할 수 있을까?' 싶은 물건들도 버젓이 손님들의 손길을 받는다. 비현실적인 공간의 힘은 청년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낭만을 잃었던 젊은 층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것이다. 각자가 가진 고민들은 다르지만 이곳에서만큼은 함께 소통할 수 있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젊은 상인들의 노력에, 전통시장에서 느끼는 것과는 또 다른 용기를 얻을 수 있다.

한옥마을에서 조선시대 생활상을 보았다면 이번에는 21세기 골목을 걸을 차례다. 자만 벽화마을에서는 40여 채의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를 감상할 수 있다. 옛날식 철대문과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골목길, 전봇대와 전선, 슬레이트 지붕은 전형적인 서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재치 있는 벽화들에 젊은 연인들은 벽을 뒤로한 채 사진 찍기에 바쁘다. 조용한 마을을 걷다 보면 소란스러웠던 마음도 가라앉고 흥미진진했던 전주 여행도 마음 한쪽에 차곡히 정리하게 된다.

글 사진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