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 '명량' 본 1,700만 명, 그들은 왜 이순신을 찾았나

'리더십 부재'의 시대, 리더를 생각하다

"리더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되는 시대다. '우리나라를 잘 이끌어달라'고 뽑아놓은 리더들은 한 표를 주기 위해 국민들이 판 발품이 아까울 정도의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선장의 모습,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정치권의 사분오열과 자기 잇속만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이 시대의 리더는 어디에 있나"라는 탄식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기업체의 CEO도 리더고 한 부서의 부서장도 리더고 심지어 서너 명의 팀원을 이끌고 있는 팀장도 리더다. 기업에서 '승진을 한다'는 말의 의미는 결국 크든 작든 한 조직의 리더가 된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 정도다.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는 시대이기에 누구나 자신만의 리더십을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진정한 리더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말은 '리더십 부재'의 시대,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생각해 본다. 경영 컨설턴트나 학자들이 쓴 어려운 리더십 대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나 영화, 그리고 TV 예능에서 볼 수 있는 리더의 모습을 가볍게 살펴보자.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자료에 따르면 영화 '명량'이 이달 6일 누적관객 1천700만 명을 돌파해 '아바타'(1천330만2천637명)와 '도둑들'(1천298만3천341명)을 누르고 역대 최다 관객을 동원한 영화로 기록됐다. 11일 현재 '명량'의 누적관객 수는 1천742만8천120명이다.

'명량'의 흥행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언급되고 있다. 1시간가량 진행된 해상전투 장면의 박진감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고,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한 효과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가장 큰 요인으로 이순신의 리더십을 영화를 통해 생생하게 느꼈다는 점을 드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명량'은 '성웅 이순신'(1971)이나 애니메이션 '난중일기'(1997) 등 기존에 제작됐던 이순신 관련 영화들이 흥행에 참패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이런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게 된다. 즉 '시대가 이순신을 불렀다'고 보는 것이다.

◆'명량'을 본 사람들은 누구?

영화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에 따르면 이 사이트를 이용해 '명량'을 예매한 관객 중 47%가 40대 이상이었고 30대가 30%인 것으로 나타났다. CGV 홈페이지에 공개된 영화 예매 분포 자료를 보면 '명량'의 관객 중 20대가 35.8%로 가장 높았지만 40대도 26.4%로 꽤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롯데시네마 홈페이지에 공개된 예매 분포 자료에는 이 영화를 본 관객 중 40대가 52%인 것으로 드러났다. 성별 분포도를 따져보면 맥스무비, CGV, 롯데시네마 모두 여성이 50% 이상, 남성이 40% 안팎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다른 영화에도 비슷한 비율로 나타나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종합해보면 '명량'의 흥행 돌풍은 결국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이끌었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1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광해, 왕이 된 남자' '변호인' 등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최근 영화들의 특징을 보면 광해군이나 노무현 대통령 등 '역사 속 리더'의 모습을 다룬 영화들이 많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40대 이상 관객들이 '명량'을 선택한 이유로 '이순신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란 점을 가장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는 40대 이상 관객들이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을 현실이 아닌 역사 속 인물, 그것도 허구가 조금 들어 있는 역사 속 인물에서 찾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영화에서 보는 '이순신 리더십'

영화평론가 심영섭 교수(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는 '명량'에서 보여준 이순신의 리더십을 '초월 리더십'으로 평가한다. 심 교수는 "원균이 시스템과 인맥에 능한 리더라고 본다면 이순신은 평상시에는 콘텐츠 개발과 준비에 철저한 리더이고, 지는 게임을 하지 않는 리더였다"며 "명량해전 자체가 배수진을 친, 그러면서도 지형지물을 이용한 탁월한 지략과 초월정신이 맞닿아 있는 해전이었기에 삶과 죽음조차 초월해 낸 리더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왜군과의 결전을 앞두고도 휘하의 장수들이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자 이순신은 막사를 불태워버리며 "육지로 간들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며 "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死卽生 生卽死)"이라고 외친다. 이를 통해 이순신은 마음이 약해지는 휘하 장수들과 병사들을 다잡는다.

이러한 이순신의 초월 리더십은 해상 전투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명량해전 때 이순신이 탄 배는 대장선이 되어 선봉에 선다. 한 시간가량 진행되는 전투에서 치열하다 못해 처절하게 백병전을 벌이는 이순신의 모습을 보고 뒤에서 쭈뼛거리던 휘하 장수들도 진격을 시작한다. 또 피란을 가던 백성들이 합심해 배가 소용돌이로 빠지는 것을 막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적어도 이순신이 백성들을 믿게 만드는 리더십을 선보였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임원빈 소장은 그의 책 '이순신 승리의 리더십'에서 명량해전을 리더십의 관점에서 분석했는데, 임 소장은 '인격감화, 이성공감, 필벌, 솔선수범'을 명량해전 승리를 이끈 이순신 리더십의 핵심으로 지목했다. 장수를 설득하는 논리적인 모습과 이를 통한 이성적 공감, 백성들을 따르게 하는 인격, 지엄한 군율을 지키는 원칙주의자의 모습, 대장선이 선봉에 서는 솔선수범 등을 영화 '명량'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러한 요소들을 극장에서 확인한 관객들은 이순신을 '인간적인 리더, 따를 수 있는 리더'로 인식하면서 많은 공감을 얻은 것이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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