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名 건축기행] <35>구미 숲은 성 유치원

햇살 머물고 바람의 노래∼♬ 동심, 자연과 '깔깔깔'

북서쪽 전경.
'숲은 성'이라는 이름처럼 건물은 숲 속 자연을 향하고 있다. 건축가의 자연에 대한 애착과 어린이 사랑에 대한 철학이 그대로 투영된 곳이다. 앞과 뒤, 위와 아래, 안과 밖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다. 설계 김기석(기단건축)
지하층으로 가는 계단
북서쪽 전경.
조극래 대구가톨릭대 건축학부 교수
지하층으로 가는 계단
조극래 대구가톨릭대 건축학부 교수

독일의 지리학자 프리드리히 라첼(Friedrich Ratzel)의 환경결정론(environmental determinism)은 물리적 주변 환경을 문화 형성의 중요한 결정 요인으로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초기 근대건축의 거장들은 근대건축 운동의 주된 이슈였던 사회개혁(Social Reform)과 관련하여 주거와 건축적 환경을 개선하면 사회적 병폐도 치유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공간이 인간의 행태를 결정한다는 건축결정론(Architectural determinism)을 굳게 믿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주장들이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완전히 지배한다고 하는 것은 일방적인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환경이 우리의 행동과 생각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개인적 사고의 틀이 어느 정도 자리 잡힌 성인의 경우도 환경의 영향에 민감할 진대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뛰어놀고 배우고 친구를 사귀는 공간이야말로 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은 굳이 과학적 근거를 대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위세를 떨치던 늦더위가 물러나고 상쾌함을 품은 맑은 햇살이 가득한 9월의 오후, 구미시에 있는 '숲은성 유치원'을 찾았다.

푸른 산을 배경으로 소담하게 자리한 유치원 마당에서는 아이들이 모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파란 하늘 위로 퍼지는 아이들의 소리가 무척이나 여유롭다. 천생산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유치원은 공단의 번잡함에서 일정 부분 벗어나 있어 장소적으로도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자연을 안기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숲은 성'이라는 유치원의 이름에서도 읽히듯이 건물은 숲 속 자연을 향하고 있었다. 자작을 비롯한 나무들이 건물 구석구석 가까이 다가 서 있고 이름 없는 풀들이 나무와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멀리서 접근하며 마주친 건물의 외벽은 다소 거친 느낌이었지만 노출콘크리트와 징크 그리고 원목으로 구성된 자연의 물성을 지닌 마감은 풀과 나무 그리고 흙을 품고 있는 유치원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

입구로 올라서며 만나는 마당은 잔디와 나무 데크로 연출되어 어린이들이 뛰어놀기에는 그만이다. 마당 가운데는 원목이 깔린 계단식 중정을 두어 지하층의 강당과 마당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준다. 이곳을 통해 아이들은 자유롭게 안과 밖을 넘나든다. 계단식 중정답게 공연관람을 위한 객석의 기능을 담아내면서도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상상케 하는 공간이 된다. 벌렁 누워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재잘거리기도 한다. 때론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도 있는 훌륭한 야외 식당이 되기도 한다. 금방이라도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듯한 기대의 공간인 동시에 안팎을 연결하는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곳은 언제나 햇살이 머물고 바람이 시원하게 통하는 공간이다. 아이들의 자유로움과 상상력을 키우는 자연을 품은 공간이다.

실내로 들어서면 건물은 무척이나 밝다. 인공조명 없이도 충분한 자연광을 실내 구석구석 맞아들이고 있다. 전면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홀과 복도를 환하게 열어 놓고 있을뿐더러 외부의 자연을 안으로 성큼 끌어들이고 있다. 건물을 남쪽에서 바라보면 세 개의 매스로 분절되어 있다. 각 매스의 1층과 2층에는 교실들이 남쪽으로 열려 있어 한껏 빛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온종일 푸른 산을 마주하고 있다.

건축가 김기석의 자연에 대한 애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분절된 매스 사이사이를 투명하게 처리하고 그 공간에 자작나무를 심어 악착같이 자연과 교감을 시도한다. 지하 공간 역시 건축가의 집념을 피할 순 없다. 지하 강당 공간을 옹벽과 분리하여 그 사이로 틈을 만들었다. 그 벽을 타고 틈으로 스며드는 빛은 공간 전체를 밝게 할 뿐 아니라 그 틈 속에도 식물을 심어 마치 숲 속 깊은 곳에 앉아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 어둡고 답답할 것으로 여겨지는 지하층 복도의 끝 부분도 자작나무 한그루를 품고 하늘로 열려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숲이 건물로 밀려들어 오고 있다.

자연만큼 친근한 것은 없다. 삭막한 도시를 이고 사는 우리에게 숲이 주는 신선함은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것이다. 숨 막히는 인공의 포장 위에서 생활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가능한 많은 자연을 내어 주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이 자연의 순수함을 닮게 하고 그리하여 우리의 세상이 보다 아름답게 만들어지도록 하는 첫 걸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어린 아이들을 내게 오게 하고 그들을 가로막지 마라. 하느님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그렇다. 어린 아이들이 뛰어노는 곳이 천국과 같고 천국의 표정은 자연과 같아야 하므로 어린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자연과 닮아야 함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글'사진=조극래 대구가톨릭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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