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이… 솔잎 이불 아래 봉긋 솟은 '가을 보물'

영덕 채취 현장 동행 취재

기자는 임업 후계자 이상범(46) 씨와 함께 값비싼 음식의 대명사
기자는 임업 후계자 이상범(46) 씨와 함께 값비싼 음식의 대명사 '송이'를 찾아 산에 올랐다. 사진은 송이를 채취하고 있는 이상범 씨. 김대호 기자

영덕에는 요즈음 이른 아침부터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등산객들이 아니다. 돌아온 송이의 계절을 맞아 송이를 채취하는 임업인들이다.

극심한 가뭄으로 송이가 제대로 나지 않았던 지난해와는 달리 올여름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비가 많이 내려 송이 풍년 기대감이 높다.

기자는 영덕 축산면 한 야산에서 송이를 따는 임업 후계자 이상범(46) 씨와 함께 이달 17일 송이 채취 작업에 동행했다.

◆험악한 길을 헤매야 송이를 만난다

이 씨가 있는 산으로 가기 위해 사륜구동 RV 차량에 몸을 실었다. 임도가 잘 돼 있다고는 하지만 길이 좁고 험해 웬만한 차량으로는 산을 오르기가 어렵다.

잘 포장된 마을 길을 지나니 좁은 농로, 그리고 비포장길이 나온다. 산이 가까워지자 곧이어 안내자가 안전띠를 잘 매고 손잡이도 꼭 잡으라고 했다. 산길 임도로 접어들자 길이 정말 험악해졌다. 저절로 손잡이를 잡은 손과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30여 분만에 야산 정상 부근에 도착해 이 씨를 만났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한 달이나 빨리 송이가 생산됐고 추석 전후까지 물량이 많았지만 지난 주말부터 채취량이 좀 줄었다고 합니다. 제가 송이를 따는 이 산에도 현재 송이가 좀 뜸하네요. 비가 한 번 더 뿌려주고 기온이 좀 더 떨어지면 보름 뒤 대량수확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씨가 내어준 송이 채취용 나무 지팡이를 받아들고 이 씨를 따랐다. 지팡이로 잡풀과 잡목들을 헤치고 한참을 걸었다. 이 씨의 머릿속에는 송이가 잘 나오는 지점이 훤하게 그려져 있었다. 소나무를 척 보면 그 아래 송이가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송이는 소나무의 잔뿌리 부근에서 공생합니다. 소나무로부터 양분을 공급받고 또한 땅속에서 흡수한 양분을 소나무에도 줍니다. 그러다 보니 소나무가 너무 어려도 안 되고 수령이 오래되어도 송이가 없습니다. 생육이 왕성한 30~40년생 내외의 적송 부근에 송이가 가장 많이 납니다."

◆솔잎 이불 밑에 송이가

이 씨가 한 소나무 부근에서 멈췄다. 거기에 송이가 있단다.

한번 찾아보라는 말에 소나무 밑 경사면에 쪼그려 앉았다. 갓이 활짝 핀 송이 한 개가 금세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 씨는 부근에 더 있으니 찾아보란다. 소나무 바로 밑에 잔풀과 어린나무들 그리고 바닥에는 솔잎이 덮여 있어서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솔잎들 사이로 살짝 솟아오른 흰색이 보였다. 솔잎 이불을 덮고 숨어 있던 큼직한 1등급짜리 송이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래로 줄지어 숨어 살짝 고개를 내민 송이 몇 개가 향기를 뿜으며 유혹하는 듯했다.

"송이는 뿌리를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줄지어 생기거나 둥근 원을 그리며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잘못해서 밟을 수도 있기에 조심해서 찾아야 합니다. 수년 전 송이가 대풍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소나무 아래서 둥글게 솟아오른 송이 100여 개를 한꺼번에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대박이었죠."

이 씨는 산 정상 부근에 작은 움막을 설치해놨다. 채취 작업을 하다 잠시 쉬기도 하는 목적이지만 송이 도둑들을 막기 위한 이유가 더 크다.

"언젠가 막 올라오는 송이를 발견한 뒤 성장을 좀 더디게 하고 수확 시기를 늦추기 위해 종이컵으로 표시해 놓은 적이 있습니다. 며칠 뒤 가보니 홀랑 다 캐 버리고 없었어요. 그 뒤로는 종이컵 표시는 하지 않습니다. 정말 그럴 때면 맥이 풀립니다. 송이 값이 비싸다 보니 그런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최근 영덕 다른 산에서도 송이 도둑이 잡힌 일도 있다고 합니다."

움막 부근에 브라운관형 모니터 1개가 처박혀 있다. 송이가 많이 나는 곳에 설치한 감시카메라를 보는 모니터였다. 감시카메라를 보기 위해 발전기까지 돌렸단다. 하지만 지금은 블랙박스 카메라로 대체됐다.

◆까다롭기로 이름난 송이

송이 등급은 모양과 크기가 결정한다. 길이 8㎝ 이상이고 갓이 피지 않은 것이 1등급이다. 그 이하면 2등급이다. 크지만 갓이 활짝 피어버리면 아무리 크더라도 3등급이다. 기형이나 벌레 먹은 것은 등외품이다.

추석 전 물량이 쏟아지면서 산림조합 공판가 기준으로 20만원 이하로 떨어졌던 1등급 가격이 33만원선으로 다시 뛰었다.

"귀하신 몸, 송이는 정말 생육조건이 까다롭습니다. 비가 안 오면 송이가 잘 안 나지만 비가 너무 많이 오면 빨리 피었다 썩어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올여름처럼 비가 많이 오는 경우는 배수가 잘 되는 토양에서 많이 나고 가뭄이 이어지면 배수가 잘 되는 것이 불리한 요인이 되기도 하지요."

날씨와 토양, 바람, 볕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지만 송이 생산지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산불이다. 산불이 난 지역에서는 30년 이상 송이 농사는 끝이다.

울진의 경우 십수 년 전 큰 산불이 났었다. 그 이후로 송이 생산량이 급감했다. 영덕 내륙지역 산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고 매년 가을 송이로 인간에게 보답하고 있다.

송이 채취 작업 도중 이 씨의 휴대전화가 연방 울렸다. "송이를 많이 땄느냐"는 문의 전화였다.

"송이 물량은 이달 말쯤이면 풍성하게 쏟아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식당'술집 등에 장사가 잘돼 송이발 경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 씨는 송이가 지역 경제 효자라고 했다.

영덕 김대호 기자 dh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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