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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읽어주는 남자] 시인과 촌장 - 2집 푸른 돛

한국인 4명 중 1명은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 그래서 친근하고 귀여운 동물이 등장하는 대중가요도 많이 나온다. 대표 주자는 고양이다. 허밍어반스테레오, 스웨터, 캐스커 등 예쁘고 발랄한 노래로 유명한 뮤지션들이 모여 '고양이 이야기'(2007)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냈을 정도다. 이들은 실제로 고양이를 키우며 겪은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었다.

그보다 앞서 모던록 밴드 체리필터는 2집(2002) 수록곡 '낭만고양이'로 스타덤에 올랐다. '내 두 눈 밤이면 별이 되지. 나의 집은 뒷골목 달과 별이 뜨지요. 두 번 다신 생선 가게 털지 않아. 서럽게 울던 날들 나는 외톨이라네. 이젠 바다로 떠날 거예요. 거미로 그물 쳐서 물고기 잡으러.' 얼핏 얌전해 보이는 고양이에게 쾌활한 낭만의 서사를 부여한 곡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댄스 듀오 '터보'의 1집(1995) 및 이승철의 3집(1991)에 실린, 우연히도 같은 제목이 붙은 '검은 고양이'가 있다. 둘 다 흠모하는 이성을 도도한 고양이에 빗댄 노랫말로 히트했다.

그리고 포크 듀오 '시인과 촌장'의 2집 푸른 돛(1986)에 수록된 '고양이'가 있다. 동요를 제외하면 우리 가요계에서 강병철과 삼태기의 '미스쥐와 고양이'(1984) 이후 두 번째로 고양이를 소재로 쓴 곡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미스쥐와 고양이는 노총각 고양이의 애환을 그린 우화. 고양이를 찬미의 대상으로 노래한 것은 공식적으로 시인과 촌장이 최초였다.

시인과 촌장의 두 멤버, 싱어송라이터 하덕규와 기타리스트 함춘호가 합작한 이 앨범은 '어른동화'로 평가받는다. 고양이를 비롯해 푸른 돛, 비둘기, 매, 얼음 무지개, 진달래 등 노래 소재들은 괴롭고 또 외로운 어른들의 삶 속 한 줄기 희망을 표현한다.

여기에 더해 고양이의 노랫말에 대해서는 또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림으로 치면 관찰부터 스케치까지 뛰어난 고양이 소묘다. '빛나는 두 눈이며 새하얗게 세운 수염도, 그대는 정말 보드랍군. 창틀 위를 오르내릴 때도 아무런 소릴 내지 않고' '때때로 허공을 휘젓는 귀여운 발톱은 누구에게도 부끄럽진 않을 테지' '캄캄한 밤중에도 넘어지지 않는 그 보드라운 발, 아픔 없는 꼬리' '높은 곳에서 춤춰도 어지럽지 않은 그 아픔 없는 눈, 슬픔 없는 꼬리'. 노랫말은 하덕규가 써서 직접 불렀다. 노래 중반부에서는 "야옹!" 소리도 내지른다. 함춘호는 중반부 조바꿈 등 잔잔한 포크 속 미묘한 사이키델릭 분위기의 기타 연주를 들려준다. 친해진 듯 다시 낯설어지길 반복하는 고양이의 습성을 표현한 것 같다.

이들은 굳이 강조하지 않았지만, 앨범 커버(사진)의 주인공도 바로 고양이다. 대중들에게는 '사랑해요 라고 쓴다'라는 후렴구로 유명한 포크송 '사랑일기'로 기억되는 앨범이지만,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이 앨범의 백미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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