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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대구서 감옥생활한 항일저항 시인 김영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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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잇슬테요/ '''/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잇슬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본명이 윤식(允植)인 김영랑(金永郞)은 190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강진보통학교를 마치고 1917년 휘문의숙에 들어가면서 문학에 관심을 두었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에서 거사를 꾀하다 잡혀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 옥살이했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영문학을 공부하며 박열(朴烈)과 같은 항일 독립투사들과 사귀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 귀국해 박용철 정지용 등과 시문학 동인을 결성하고 작품을 썼다. 1930년 창간된 '시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며 본격 활동했다. 1934년엔 고향의 구수한 사투리가 등장하고 대표 작품이 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발표했다.

순수시 지향의 초기와 달리 1940년대 일제지배 말기엔 적극적인 사회참여 성격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광복 후엔 고향에서 우익활동을 했다. 대한독립촉성회에도 참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냈고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했고, 1949년엔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 후 9월 28일 서울수복 전투 때 유탄에 맞아 그해 오늘 삶을 마쳤다. 고향엔 시비가 세워졌고, 정부는 2008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독립저항 시인 이상화를 기리는 대구의 '이상화기념사업회'와 김영랑 추모의 '영랑기념사업회'는 2013년 손을 잡고 두 지역 항일저항 시인을 위한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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