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글을 생각하다] 잘못 쓰면 인생이 꼬인다!

한글 맞춤법 쓰기 무엇이 문제?

'맞춤법 지키기'가 귀찮은 시대다. 말보다 글이 중요하던 시절 맞춤법을 지키는 일은 일상이었다. 글은 손으로 쓰고 눈으로 보는 순간 틀린 말이 눈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글보다 말의 비중이 크다. 매체가 발달하며 손으로 글을 쓰는 일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은 말하듯 글을 쓴다. 편한 대로 말을 전달하다 보니 맞춤법이 부정확해도 넘어가는 게 일상이 됐다.

그러나 맞춤법이 갖는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위의 대화체에서 보듯 맞춤법 하나로 소중한 인연을 잃을 수도 있다. 누리망(인터넷)에서 많이 틀린다는 대표적인 맞춤법들을 골라 다양한 연령층에게 간단한 시험을 통해 물어봤다. 결과는 어두웠는데 비단 시험문제를 푼 일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우리말 맞춤법

시험을 푼 사람들은 중학생, 대학생 그리고 일반 직장인 각각 10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맞춤법 그까짓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결과물을 제출할 때는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다. "어려웠다" "헷갈렸다" "잘할 줄 알았는데 못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먼저 중학생들. '맞춤법 시험을 보겠다'는 말에 학생들은 "나 맞춤법 많이 아는데!"라며 자신 있게 문제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패기 넘치는 모습도 잠시, 들여다볼수록 헷갈리는 문제들에 학생들은 고개를 저었다. 문제를 제출할 때쯤, 자신만만하던 학생들은 "다 찍었어요…"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모(14) 군은 "일상에서 많이 쓰는 말들인데 막상 글로 보니 헷갈렸다"고 털어놨다.

대학생들 역시 맞춤법을 향한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대학생 10명에게 같은 문제를 제시했다.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강정욱(21) 씨는 "맞춤법이요? 그 정도는 꿀이죠(쉽죠)"라며 자신 있게 시험지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여기저기서 "어? 이거 뭐더라" "아, 헷갈리네"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평소 자주 듣고 쓰는 말들이지만 맞춤법은 정확하게 몰랐던 탓이다. 이날 대학생 10명의 평균 점수는 60점. 다 맞힐 것 같던 학생들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 자신이 맞춤법을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점에 놀라는 눈치였다.

◆점점 더 소홀해지는 맞춤법 지키기

채팅이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우리말의 쓰임이나 그 표기 방식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바른 맞춤법 자리는 '망가진 우리말'이 대신하고 있다. 소리 나는 대로 쓴 말과 띄어쓰기를 무시한 채 쓴 말, 과도하게 줄인 말 등이 그 예다. 특히 채팅 환경에서는 전체를 다 쓴 말보다는 준말로 쓰는 게 더 편하다. 손가락으로 타이핑을 하기에 시간이 절약되기 때문이다. 하정우(14) 군은 "'알겠다'는 말을 'ㅇㅇ'으로 쓰거나 'ㅇㅋ'라고 쓰는 건 기본"이라며 "요즘에는 '안난뚱' (안경, 난쟁이, 뚱돼지),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버카'(버스카드) 등 줄임말이 유행"이라고 설명했다.

채팅창에서는 띄어쓰기도 철저하게 무시된다. 예를 들면 '나는 밥을 먹어'는 '나는' '밥을' '먹어'를 각각 엔터키를 눌러 보내는 식이다.

◆글보다는 말의 비중이 늘어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이 소통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편지, 전화, 대면 소통 등 의사소통 방식이 한정적이던 때와는 다르다. 예전에는 말과 글의 구분도 명확했다. 말은 주로 대면하거나 전화를 통해 전달했고, 글은 편지나 문학작품으로 접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각종 채팅 애플리케이션과 SNS가 발달하면서 대화하듯 글을 쓰는 일이 일상이 되고 있다.

말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사람들은 맞춤법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대학생 김효인(22) 씨는 "말만 통하면 맞춤법은 틀려도 크게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친한 사이인데 맞춤법을 너무 정확하게 쓰면 오히려 더 딱딱한 느낌이 들어 일부러 친한 사이에서는 편하게, 쉽게 쓴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어떻게'와 '어떡해'도 '어캄' '어쩔' '어떠케' 등으로 쓴다"며 입을 모았다.

평소 문학작품을 많이 읽는다는 김영빈(21) 씨는 대학생 대상자 중 맞춤법 시험에서 고득점을 차지했다. 그의 생활에서는 말보다 글이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에 책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읽어서 그런지 눈에 익은 것들을 고르니까 거의 다 맞았다"고 말했다.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김기호 교수는 "예전에는 글 쓰는 행위는 '기록', 말은 '구술'이라고 구분이 명확했지만 지금은 그 중간적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며 "언어란 사용하기 편하게 변하는 게 당연하지만 언어 파괴, 세대 격차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중요한 맞춤법

'뜻만 통하면 된다'는 통념과 달리 여전히 맞춤법이 갖는 힘은 막강하다. 맞춤법을 틀리면 안 되는 상황에서 틀렸을 경우, 그에 따른 이미지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맞춤법은 특히 이성 관계에서 생각보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한 결혼정보업체가 2012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맞춤법이 틀리는 이성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진다'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이 남녀 70%가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맞춤법을 틀리는 이성'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이 일반적이다. 류효주(22) 씨는 "'오디야?' '모해?' 등은 그냥 애교로 넘어갈 수 있지만 정말 몰라서 틀렸을 것 같은 '병이 낳다'('병이 낫다'의 잘못), '않 된다'('안 된다'의 잘못) 등을 쓰면 대화하기 싫어진다"고 말했다.

회사 생활에서도 맞춤법은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직장인 이도현(38) 씨는 "가끔 업무 관계에 있는 직장 동료에게 맞춤법 지적을 당할 때가 있는데, 생각보다 불쾌하다"고 털어놓았다.

이 때문에 젊은 층 사이에서는 SNS에 올라오는 맞춤법 정보로 한글을 공부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시험 성적에서 고득점을 얻은 신입사원 김진화(24) 씨는 "요즘에는 맞춤법을 많이 틀리면 무시당하거나 어린애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경을 바짝 쓰게 된다"며 "그러지 않기 위해서 SNS '국립국어원' 페이지를 받아보며 모르던 맞춤법을 하나씩 배우곤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강유정(27) 씨도 "맞춤법을 틀리는 사람이 많아 '맞춤법 요정'이라는 말도 생겨났다"며 "커뮤니티에서 틀린 맞춤법을 지적하고 고쳐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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