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독일의 사회적기업이 우리나라와 구별되는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대부분 사업이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도하는 상향식(Bottom up)으로 이뤄진다. 둘째,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적기업의 재정은 민간 기업과 시민 사회의 자발적인 후원을 바탕으로 운영되며, 정부 지원을 받는 단체라도 자생력을 갖추면 지원이 중단된다. 청년 창업가를 지원하는 독일의 '소셜 임팩트 랩'(Social Impact Lab)과 장애인 고용 지원 단체인 영국의 '램플로이'(Remploy)는 이러한 사회적기업의 모델이다.
◆민간 기업 후원으로 사회적기업가 키운다
소셜 임팩트, 영어 뜻을 풀이하면 '사회적 충격'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소셜 임팩트 랩은 이름과 걸맞은 일을 하고 있다. 이곳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원하는 예비 사회적기업가를 지원하는 단체로 기업 설립을 위한 법률 지원과 금융 업무, 사업 컨설팅, 사무 공간을 모두 무료로 제공한다. 1994년 베를린 지부를 시작으로 함부르크, 라이프치히에 지부를 만들었고, 올해 2월 프랑크푸르트에 문을 열면서 4곳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소셜 임팩트 랩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났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지역 간 빈부 격차, 인구 이동, 일자리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려고 시민사회가 먼저 나선 것이다.
2층 사무실로 들어가자 확 트인 공간에서 일하는 청년 사업가 서너 명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칸막이도 없다. 이들은 같은 회사 직원이 아니라 각자 독립된 사업을 하는 기업가들이다. 소셜 임팩트 랩의 지원 사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안데스 그린더'(Anders Grunder)는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있는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독일재건은행(KfW)이 후원한다. 재밌는 것은 '샤슨 눗서'(Chancen Nutzer)다. 미국 대형 금융기업인 JP모건체이스가 후원하는 이 프로젝트는 이민자 출신 청년에게만 기회를 준다. 소셜 임팩트 랩 컨설턴트 노라 쉬망 씨는 "독일은 이민자가 많이 있는 국가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구직 활동을 할 때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서 먼저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두 프로그램 다 정부 지원금은 전혀 없고 민간 기업의 후원으로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이날 만난 멕시코 출신 독일인 다리오 헤글란(26) 씨는 노인 운전자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레이싱 힐더'(Racing Hilde)라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이곳에서 사무실을 공짜로 이용하는 것은 물론 법률 조언과 사업성을 평가받는 컨설팅까지 전부 무료로 받고 있다. 그가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할머니 때문이다. 헤글란 씨는 "할머니가 80세였을 때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독일에는 노인 운전자가 많은데 노인들은 젊은 운전자들에 비해 상황 인식이 느리고 매일 상태가 다르다"며 "어르신들이 운전하고 싶은 날, 자신이 운전할 수 있는 컨디션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개발 중인 프로그램을 보여줬다. 그는 "자동차 운전 게임처럼 차로를 변경하고, 장애물을 피하는 간단한 게임"이라며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아는 노인들의 가족들이 도와준다면 쉽게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소셜 임팩트 랩에 입주한 예비 사회적기업은 총 14팀. 1년에 8팀씩 선정해 8개월간 아낌없는 지원을 할 예정이다. 노라 쉬망 씨는 "이미 성공한 사업가들을 초청해 워크숍을 열고, 열린 사무 공간에서 다른 사업가들과 소통할 수 있어 사업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다. 우리의 역할은 예비 사회적기업가들이 수익을 창출하는 길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장애인 잠재력 개발, 일자리 찾아준다
영국 런던 노스 로드에 있는 램플로이 사무소. 벽면에 붙은 '구인란'에는 의류업체 유니클로, 유통 업체인 테스코 등 다양한 업체들의 구인 광고가 붙어 있었다. 영국 램플로이는 장애인들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다. 맞춤형 직업 소개소 같은 개념이지만 모든 서비스는 무료로 진행된다. 램플로이가 생긴 것은 1946년으로 2차 세계 대전 이후 상이군인들의 일자리를 제조업체와 연결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전체 장애인으로 범위를 확대했다. 원래 공장 50여 개를 직접 운영하며 장애인을 고용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직영 공장을 폐쇄했고, 다른 업체에 일자리를 연결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영국의 대표 유통업체인 세인스버리(Sainsbury)와 막스앤스펜서(Marks & Spencer), 호텔과 세탁 회사 등 2천500여 개 업체에서 램플로이 소속 장애인 1만여 명의 일자리를 찾아주고 있다.
램플로이 지부는 영국 전역에 60여 개. 이 단체의 성공 비결은 '어드바이저'(Advisor)에 있다. 어드바이저는 장애인 지원자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장애 종류와 성격, 경력에 알맞은 직장을 찾아서 '매칭'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선생님과 같은 존재다. 또 직장을 찾은 후에도 힘든 점은 없는지 전화로 장애인과 계속 소통하고, 고용주나 직장 상사를 직접 만나 사후 관리까지 책임진다. 렘플로이 지부 매니저 슈밥 유잼 씨는 "어드바이저는 (장애인이) 일을 하다가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 직장에 찾아가 부서 이동을 제안하는 등 직장과 장애인 근로자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한다. 만약 고용주가 장애인 고용을 꺼리면 '5일만 고용해 보고 이후 결정하라'며 설득하는 작업도 한다"고 설명했다.
◆ 자생력 갖추면 정부 지원금 끊는다
기업 문화도 장애인 고용을 활성화하는 데 한몫한다. 영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기업체의 장애인 의무 고용을 법으로 강제하지 않는다. 의무 고용 할당제도 없는데 기업들은 나서서 장애인을 고용한다. 한쪽 손이 없는 램플로이 직원 제러미 드라이버 씨는 "영국에는 기업들이 사회 공헌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장애인을 고용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기업에 지원할 때도 정신 장애, 학습 장애처럼 장애가 있다는 사실만 알려주지 사생활 보호 때문에 구체적인 장애는 언급하지 않는다"며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에 비해 이직률이 낮다는 점도 장점이다. 램플로이가 소개한 장애인이 한 직장에 6개월 이상 남아있는 비율이 70~80% 정도"라며 통계를 언급했다.
램플로이는 내년 3월부터 정부에서 독립한다. 영국 노동연금부는 램플로이가 자생력을 갖췄다고 판단, 매년 4천만파운드(우리 돈 약 687억6천만원)의 지원금을 단계적으로 줄인 뒤 3년 뒤에 완전히 끊을 것이라고 밝혔다. 램플로이 직원들은 공무원 신분이 사라지는데도 싫은 내색이 없다. 램플로이 정책 담당관 톰 힉스 씨는 "우리가 매년 4천만파운드의 정부 지원을 받지만 장애인 고용을 통해 아낀 복지 예산은 9천700만파운드(약 1천667억5천만원)에 달한다. 정부 통제에서 벗어나면 더 자유롭고, 융통성 있게 장애인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램플로이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파트너들을 찾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영국 런던에서 글 사진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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