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 속에서-중국 동포 한국 생활기] 휴전선을 느끼다

바다에는 자유로이 바닷고기들만이 꼬리 치며 이쪽, 저쪽의 욕심도 나무라지 않고 넘나드는데 나는 어찌하여 한민족으로 휴전선을 코앞에 두고 고국에서 고국을 바라보아야 했던가.

날씨가 비 올 것 같았다. 계획했던 길은 행해야 했다. 강원도 통일전망대에 올라 북쪽에서 부는 바람을 맞받으며 어느 동포의 통일에 대한 염원으로 사뿐히 젖어들고 싶었다. 버스 길은 멀었다. 속초에서부터는 젊은 군인들을 볼 수 있었고 통일전망대에 다다르는 동안 부대도 몇 곳 지나면서 휴전선이 곧 멀지 않았음이 눈썰미로 느껴졌다. 마지막 남측 마을인 명파리를 지나 통일전망대 입구 검문소에 이르러 진열된 지뢰 파편과 잔재들이 흥미를 끌면서 6'25전쟁의 상흔을 느낄 수 있었다.

통일전망대에 오르는 보도에서는 동해가 한눈에 안겨 왔다. 이북과 이남의 분계선이 가름해도 크지 않은 너울이 이는 바다가 푸르고 해맑아 아름다웠다. 거진읍 포장마차에서 대구탕을 끓여주던 주인장이 통일전망대 인근 바다에서만 대구가 잡힌다는 이야기를 해주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만큼 분계선 때문에 고기잡이나 물질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한때 일진광풍 일던 저곳이 지금은 임자가 없다니. 천혜 자원의 바다도 사람들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쟁탈전에 두 쪽 났다는 것에 이름 못할 격정이 솟아올랐다. 바다에는 자유로이 바닷고기들만이 꼬리 치며 이쪽, 저쪽의 욕심도 나무라지 않고 넘나드는데 나는 어찌하여 한민족으로 휴전선을 코앞에 두고 고국에서 고국을 바라보아야 했던가. 연민이 차올랐다.

통일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을 잡았다. 바다 위에는 북녘 섬들이 보이고 해변에는 지평선까지 부드러운 백사장이 이어졌다. 휴전선이 취소되는 날은 이토록 아름다운 바닷가를 통일해수욕장으로 만들고 한민족들이 즐기고 공감할 수 있는 낙원으로 만들며 해마다 기념식을 가지면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었다. 그 위로는 남북으로 향한 두 줄기 레일과 하얀 도로가 사명을 다하지 못한 듯 외롭게 침묵한 채 숲 속으로 뻗어 있었다. 산봉우리 위에는 북한 초소가 보이고 그 옆에는 351고지 전투장이었던 높은 봉우리가 서 있었다. 좌측에는 천하의 절승경개 금강산이라고 하는 데 흐린 날이어서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6'25전쟁의 참상과 분단의 아픔을 감수하게 하는 체험전시장은 말 그대로 생생한 화폭으로 안겨왔다. 6'25전쟁으로 쌍방은 1천여만 명의 이산가족이 생겼고 10여만 명의 전쟁고아가 생겼다고 한다.

통일전망대를 돌아서다 말고 다시 어머니의 고향이 있는 북녘을 바라보았다. 돌아가실 때까지도 중국 조교로 산 어머니는 6'25전쟁 전 살길을 찾아 조선족 1세가 된 이남 출신 할아버지 등에 업혀 두만강을 건너, 꽃다운 18세 나이에 아버지한테 시집왔다. 할아버지가 굳이 밤새 두만강을 건너 며느릿감을 구해 와야 했던 것은 형제 중 막내였던 아버지가 벙어리였고 같은 처지의 짝을 찾기 위함이었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당시 두만강 양쪽은 그리 삼엄하지도 않았고 어머니도 시집온 후 자주 두만강을 건너 처가를 드나들었다.

북한의 산도 푸르렀다. 인적이 끊긴 몇 ㎞ 휴전선에는 울창한 수목 숲들만 조용히 침묵하고 녹색 잎들로 분단의 역사를 묻어버릴 듯 우거졌다. 교두보 역할로 떠받쳐야 할 우리 동포들이 찾아왔다고 반가운지 무수히 설레기도 했다. 울창한 숲에서도 네 고향 내 고향 분별없이 정 들면 다 고향, 새들만이 하늘 높이 그리고 자유롭게 철책 너머 날아오를 뿐이었다.

이미 한국은 북 이탈주민과 재한조선족들과 서로 어울리는 장이 되었다. 남북이 통일되면 무엇보다 이산가족과 이탈이라는 모든 아픔과 반목도 사라질 것이며 조국에 대한 자부감도 깊어질 것이다.

통일전망대에서 내려오면 맞은편에는 조경수로 만든 커다란 '통일'이라는 푸른 글자가 안겨온다. 류우익 전 통일부 장관도 무력충돌이 없고 전쟁 위협이 없는 근원적인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자면 통일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특강했다. 통일이 되면 쌍방의 젊디젊은 청년 남녀들이 대학공부하고 사랑을 속삭일 나이에 굳이 징병모집에 응하지 않아도 되며 더 이상 아까운 청춘을 희생양으로 바꾸지 않아도 될 것이지 않은가!

탐방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합장 기도를 하고 있는 성모마리아상을 쳐다보았다. 이토록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지키려고 장렬히 젊은 최후를 마쳤던 장병들을, 그리고 이제 하나가 될 이 땅과 이 하늘, 이 바다를 위해 고이 잠들라고 합장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 거룩해 보인다. 한민족의 분단을 누구보다 아프게 느끼고 있는 나는 재외동포라는 한 이름으로 통일이 오는 시대를 소망하고 있다.

이제 동족상잔의 비극이 더는 재현되지 않기를. 이제 우리 동족들이 두 손 맞잡고 하나 되는 통일의 소원만 빌기를…. 돌아서는 나의 발걸음은 아직 가볍지만은 않았다.

류일복(중국동포 수필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