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대하여 -김후란(1934~ )
아무도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픔보다 더 깊은 게 슬픔이란 걸
세월의 이끼 같은 슬픔이 그리움이라는 걸
아득히 높은 산
바위 위에 홀로 피어
한여름 분홍 꽃망울 터져
그 향기 백릿길 번져 간다는
이름도 서러운 백리향(百里香)처럼
그렇게 먼 세상
슬픔에 대하여
아무도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시집 『비밀의 숲』, 서정시학,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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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해도 듣는 이가 모르는 것이 있다. 어린이에게 첫사랑의 설렘에 대하여 아무리 차근차근 설명해도 알지 못한다. 첫사랑을 알 나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을 깨닫기 위해서는 그 나이에 도달해야 하는 것도 있다.
시인은 슬픔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인은 이별의 슬픔, 상실의 슬픔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여러 고비를 겪으면서 마침내 도달한 어느 지점에서 지나온 삶을 아우르는 근원적 슬픔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 지닌 원초적인 슬픔 그 깊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관조(觀照)라는 말, 달관(達觀)의 경지라는 말이 있다. 일정한 세월을 살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는 세상을 보는 자세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장님에게 코끼리에 대해 물으면 각기 자기가 만져본 것을 코끼리라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코끼리의 부분이지 코끼리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니 틀린 말이기도 하다. 코끼리를 총체적으로, 객관적으로 본 사람만이 코끼리의 참모습을 말할 수 있다. 노시인은 지나온 삶을 관조하면서 '아픔보다 더 깊은 게 그리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권서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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