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주 출신 가수 백년설 탄생 100주년

"친일 논란 벗고 백년설 가요제 되살려야"

일제강점기 당시 가수 백년설. 성주군 제공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등 우리 가요계를 대표하는 노래를 불렀던 성주 출신 가수 백년설이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으면서 백년설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향 성주에서 커지고 있다. 성주군과 백년설 노래비 건립추진위원회가 지난 1992년 5월 성주읍 성밖숲에 세운 백년설 노래비. 성주 전병용 기자
일제강점기 당시 가수 백년설. 성주군 제공

조국을 잃은 아픔과 한(恨)을 가슴 깊이 느끼게 했던 일제강점기 시대. 격동과 파란의 시기에 한줄기 청량제 역할을 하면서 국민의 가슴 깊은 곳 아픔을 보듬을 수 있게 했던 '나그네 설움'과 '번지 없는 주막' 노래.

주옥같은 노래를 불렀던 성주 출신 가수 백년설(白年雪'1914∼1980)이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백년설은 한때 가요계에서 친일행적 논란에 휩싸여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백년설에 대해 새롭게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중이다. 가수 백년설에 대한 평가를 흑백논리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003년 한 번 열린 뒤 명맥이 끊긴 백년설 가요제를 다시 살려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문학소년에서 가수의 길로

가수 백년설의 본명은 이갑용(李甲龍'일명 이창민(李昌民))이다.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에서 태어났다. 성주농업보습학교(현재 성주중'고교)를 마치고, 은행원 등을 거쳤지만, 백년설의 마음속에는 오직 한가지 목표,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백년설은 작가의 꿈을 키우기 위해 1938년 일본 유학 길에 올랐다. 고베(神戶)에서 당시 태평레코드사 문예부장이던 극작가 박영호 선생의 권유로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이 당시 불렀던 노래가 '유랑극단'이다. '유랑극단'은 단번에 백년설을 인기가수 반열에 올렸다. 식민통치 속에 유랑민 신세로 전락한 1930년대 당시 한국인의 처지와 슬픈 존재성을 상징적으로 잘 담아낸 명작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백년설은 하나같이 '아름다운 슬픔'을 지닌 가요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대표작은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일자일루' '대지의 항구' '삼각산 손님' '고향길 부모길' '고향설' '어머님 사랑' 등이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로 시작되는 '나그네 설움'은 내 나라 내 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침략자 일본의 종살이로 전락해버렸던 식민지 시대 한국인의 내면 풍경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나그네 설움은 그 당시 10만 장이 팔릴 정도로 대 히트곡이었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로 시작되는 '번지 없는 주막'도 주권을 잃어버린 한국인의 적막한 처지와 방황심리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일본은 가요작품을 체제 선전을 위한 나팔수로 교묘히 이용했다. 가요작품은 그 시대 대중들과 더불어 숨 쉬고, 감정을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파력과 호소력이 뛰어나다. 일본은 식민지 후반기에 집중적으로 가수들에게 친일가요를 만들어 부르기를 강요했다.

백년설도 1940년 일본의 억압에 군국가요인 '복지만리' '아들의 혈서' '이 몸이 죽고 죽어' 등을 불렀다.

수년 전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의 일환으로 친일파 명단을 발표했다. 백년설의 이름도 명단 속에 있었다. 친일파라는 딱지가 붙은 것이다.

그러나 2009년 11월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의 명단에서는 빠졌다. 이 당시 현제명, 이철 등 음악계 9명이 포함됐다.

백년설은 1978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만리타국 낯선 곳 어느 모퉁이에서 대중 가수로서 화려하게 살아왔던 과거를 뒤로한 채 1980년 65세의 나이로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노래사랑모임'추모사업추진위 결성

성주읍 예산리에는 백년설의 생가가 있었지만, 지금은 집이 허물어지고 터만 남아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옛 가수라기에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허물어진 생가터의 광경은 영광과 오욕, 좌절과 허무의식으로 일관되었던 백년설의 삶을 고스란히 들여다보는 듯 쓸쓸하고 적막하다.

재경성주향우회는 지난 2003년 '성주 백년설 가요제'를 열었다. 그러나 가요제는 1회에 그쳤다. 친일 행적을 문제 삼은 성주농민회 등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2007년 재경성주향우회와 출향인, 지역 사회단체 등을 중심으로 백년설노래사랑모임과 백년설 추모사업 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백년설노래사랑모임 한 관계자는 "일제 말기에 백년설이 비록 논란이 있는 가요를 부른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활동한 어느 가수보다 민족의식이 남달랐다"면서 "성주를 대표하는 가수로서 고향인 성주에서 백년설 가요제가 군민화합의 장으로 부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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