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부패에 눈감는 나라

국제투명성기구(TI)를 처음 만든 이는 '미스터 클린'이라 불리던 독일 출신 변호사 피터 에이겐이었다. 그는 25년간 세계은행에서 일하며 각종 지원금이 부패한 관리들의 배만 불리는 것을 경험했다. 이를 참을 수 없었던 그는 1993년 은퇴 후 고향 베를린으로 돌아가 TI를 만들었다.

TI가 하는 가장 큰일이 나라별 부패인지지수(CPI)를 조사해 발표하는 것이다. 해마다 각국 기업인 경제분석가 등을 상대로 해당국 공무원 및 정치인의 뇌물 수수와 공금 착복 등 부패 정도를 평가해 국가 부패인지지수를 내놓고 있다.

1995년 TI가 처음 41개국을 대상으로 부패인지지수를 발표했을 때 반응은 대단했다. 뉴질랜드가 10점 만점에 9.55점을 얻어 청렴한 나라 1위에 이름을 올렸고 덴마크 싱가포르 핀란드 캐나다 스웨덴 호주 등이 뒤를 이었다. 24위에 오른 것을 부끄럽게 여긴 아르헨티나는 즉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사정 작업에 돌입했다. 반면 23위에 올랐던 말레이시아는 총리가 나서 "이런 지수는 서구의 문화 제국주의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며 반발했다. 우리나라의 청렴도 순위는 이들보다 뒤진 27위였다.

TI가 처음 CPI지수를 발표한 지 20년째다. 1~10위권 국가는 해마다 거의 변동이 없다. 한결같이 개인소득이 높고 국민행복지수 역시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잘사는 나라일수록 부패 방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부패 방지를 위해 그만큼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46위로 랭킹이 떨어지고 있다.

TI가 어제 또 국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자료를 내놨다. 한국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뇌물 방지 협약을 거의 이행하지 않는 나라'로 분류 발표했다. 뇌물방지협약 이행도를 따져 '적극 이행' '보통 이행' '제한된 이행' '이행이 거의 또는 전혀 없는 국가' 등 4단계로 나눴는데 한국은 최하위 등급을 받은 것이다.

때맞춰 국내에서는 무기 도입과 관련된 방위사업청의 비리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예산은 줄줄 새고 있다. 국민들의 소중한 세금이 '먼저 보는 X이 임자'란 소리를 듣고, 관피아들의 배만 불린다.

부패국가라는 낙인은 개선의 가능성이 있는 한 감내할 만하다. 그렇지만 부패를 개선하려고 노력조차하지 않는 나라라는 낙인은 정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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