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페디엠(Carpe diem)'.
그가 떠올랐다. 이 땅의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고서다. 한국 아동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임이 드러났다. 며칠 전 보건복지부가 밝힌 '2013 한국 아동 종합실태조사'에서 그렇다. 한국 아동이 주관적으로 평가한 삶의 질은 이들 나라 중에서 꼴찌였다. 취미생활조차 즐길 틈 없이 눈만 뜨면 이어지는 입시로 인한 과도한 학업스트레스 탓이다.
그를 생각하니 그 영화가 따라왔다.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그는 영화제목에 끌려 극장을 찾았다. 그리고는 이내 영어교사 키팅(로빈 윌리암스 분)에 반했다. 키팅은 속으로 곪아 터지기 일보 직전의 억눌린 아이들에게 기존의 틀을 깨는 수업으로 인생의 눈을 뜨도록 안내한다. 가정과 학교, 사회로부터 강요된 삶을 사는 아이들의 인생은 과연 그들의 것일까. 아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키팅. 그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마음속에 쏙 넣었다.
영화관에서 그는 선생님의 꿈을 봤다. 그의 꿈은 거짓말처럼 현실이 된다. 1990년 고교에 선택과목으로 종교과목이 생긴 것이다. 그는 단숨에 종교 교사 자격증을 딴다. 그 이듬해 고등학교 교사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애초 그의 꿈은 정치가였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읽은 한 권의 책이 그의 꿈을 스님으로 바꿨다. '성(聖)'고은 에세이집'이라는 부제가 달린 고은의 '인간은 슬프려고 태어났다'는 수필집이다. 그는 첫 삭발을 했을 때 너무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단다. 또 승복이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한다.
그는 비구니 스님의 꿈과 선생님의 꿈을 차례로 이뤘다. 그는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잘 논다. 영락없는 학생들의 친구다. 여름에 드러누워 쉬는 아이에게 "배꼽 보여, 옷 덮어라"하면 "스님인데 뭐 어때요?"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이들과 짜장면을 먹고 일주일에 3, 4번이나 노래방을 갈 때도 있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차 마시러 오는 학생들이 많아 그의 방이 비좁을 정도였다.
그러다 그의 방을 찾는 학생들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갈수록 공부하기가 팍팍해진 이유가 크다. 인터넷이나 휴대폰과 친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찾는 아이들은 줄었지만 지금도 그를 어머니라 부르는 아이들이 제법 있다. 처음에 움찔하던 느낌도 이젠 진짜 어머니처럼 편안하다. 그래서일까. 공교롭게도 어머니라 부르는 이들 중에는 불교가 아니라 가톨릭 신자들이 대부분이다.
몇 년 전 4대강 사업이 한창 논란일 때 만난 그는 "어디서나, 누구라도 자연을 거스르면 못 산다"고 했다. 아이들의 행복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말로 들렸다. 오늘 아이들의 행복을 막아서며 내일의 행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억지가 아니냔 반문이었다. 아이들의 행복은 아이들 스스로 느껴야지 어른들이 강요한다고 되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는 아이들의 안전조차 지켜주지 못한 채 어른들 탐욕으로 '죽은 시인의 사회'를 반복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과 맞닿는다.
작년에 그는 능인중학교 교장선생님이 되었다. 종립학교에서 비구니 스님으로 교장선생님이 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모르긴 해도 그는 여전할 것이다. 아이들과 점심도 같이 먹고 미장원 갈 돈으로 누군가의 책값도 내주고. 문화상품권 몇 장 정도는 늘 가지고 다니며 기분 날 때 학생들에게 선심 쓰는 일도 똑 같지 않을까.
그는 책을 통해 불교에 입문했고 영화를 보고 교사가 되었다. 책과 영화는 현실의 즐거움으로 그에게 다가왔고 꿈을 찾아 주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이 학생들에게 하던 말을 오늘은 그가 어른들에게 한다.
"오늘, 아이들이 행복해 하고 즐길 수 있게 해 달라."
박창원/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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