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서각의 시와 함께] 나는 아무래도 무보다 무우가-김선우(1970~ )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무꾸라 했네 겨울밤 허리 길어 적막이 아니리로 울 넘어오면

무꾸 주까? 엄마나 할머니가 추임새처럼 무꾸를 말하였네

실팍하게 제대로 언 겨울 속살맛이라면 그 후로도 동짓달 무꾸맛이 오래 제일이었네

학교에 다니면서 무꾸는 무우가 되었네 무우도 퍽 괜찮았네

무우- 라고 발음할 때 컴컴한 땅속에 스미듯 베이는 흰빛

무우밭에 나가본 후 무우- 땅속으로 번지는 흰 메아리처럼

실한 몸통에서 능청하게 빠져나온 뿌리 한 마디 무우가 제격이었네

무우라고 쓴 원고가 무가 되어 돌아왔네 표준말이 아니기 때문이라는데,

무우- 라고 슬쩍 뿌리를 내려놔야 '무'도 살 만한 거지

그래야 그 생것이 비 오는 날이면 우우 스미는 빗물을 따라 잔뿌리 떨며 몸이 쓸리기도 한 흰 메아리인 줄 짐작이나 하지

무우밭 고랑 따라 저마다 둥그마한 흰 소등 타고 가는 절집 한 채씩이라도 그렇잖은가

칠흑 같은 흙 속에 뚜벅뚜벅 박힌 희디흰 무우사(寺)

이쯤 되어야 메아리도 제 몸통을 타고 오지 않겠나

-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사, 2007.

옛 문헌에는 '무 '라고 표기되어 있다. 반치음 'ㅿ'이 사라지면서 '무우'가 되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무수' '무꾸' '무시'로 쓰인다. 분명한 것은 현재 표준어로 정해진 '무'는 원래 2음절의 말이었다는 것이다. 왜 '무우'가 '무'가 되었을까?

표준어 사정 원칙에 서울말 중심이라는 규정 때문이다. 서울 사람들은 왜 '무우'를 '무'라고 했을까? 서울 사람들은 마음도 바쁘고 걸음도 빠르다. 보다 빨리, 보다 많이, 보다 높이 되려는 성장 위주의 사회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무보다 무우라 해야 가을 무우의 제 맛이 난다. 무의 계절이다. 오늘 점심엔 뜨거운 밥에 곱게 썬 무우 생채를 얹어 비벼먹어야겠다.

시인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며 대구의 '첫 여성 단체장'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대구의 경제적 문제를 해...
이달 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넘어서며 199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중동 전쟁의 여파로 원화가치가 급락하고 있어 1,500...
경기 남양주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한 40대 남성 A씨가 의식 불명 상태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이 지연되고 있으며, A씨는 범행 후 전자발찌...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폭격으로 중동 전쟁이 발발한 가운데,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살해하겠다고 공언했으..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