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금주의 정치 이슈] 도서정가제 시행…책값만 올리는 '단통법' 재판?

주부 홍모(32) 씨는 지난주 인터넷 서점에서 조선왕조실록, 장편소설, 한국문학 전집 등을 한꺼번에 샀다. 책 가격이 오를 것이란 말을 듣고 부랴부랴 구입했다. 홍 씨는 "책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니지만, 전집류는 싼값에 미리 사두면 두고두고 읽을 수 있어 온라인 서점을 중심으로 한 할인 행사를 눈여겨봤다가 질렀다"고 말했다. 70만원어치다. 정가로 사면 100만원 정도 했다.

21일, 할인 경쟁으로 위기에 처한 중소서점을 살리고 출판산업을 부흥시키자는 취지로 '도서정가제'가 시행됐다. 하지만 도서 할인 폭을 줄이고자 도입된 도서정가제를 두고 서점, 출판업계, 소비자 모두 '제2의 단통법(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개선법)'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도서정가제, 무슨 내용 담고 있나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 도서유통시장 규모는 2조6천억원. 이 중 온라인서점 비중은 35.8%에 달한다. 전자상거래 중심으로 도서 유통구조가 바뀌면서 중소서점 잠식 우려가 나왔다.

그래서 도서정가제 적용 범위, 할인 범위 등을 재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도서정가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이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이전에 비해 할인 폭을 줄이고,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이에 도서 할인율은 기존 19%에서 최대 15%(10% 할인+5% 추가혜택)로 줄었다. 적용대상은 그동안 예외가 적용돼 할인이 자유로웠던 실용서, 초등학습참고서와 발행일로부터 18개월이 지난 구간(舊刊)으로 확대됐다.

시행령 적용 전 업계의 의견 수렴 요구가 커지자 정부는 지난달에야 공청회를 열어 업계가 제안한 신간 기증 도서를 중고책에서 제외하는 등의 내용을 세부 시행령에 담았다.

◆도서정가제, 책값만 높이는 단통법 되나

책값을 올리는 도서정가제가 제2의 단통법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정치권도 긴장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산업진흥원은 도서정가제 도입 후 책 한 권당 평균 가격이 1만4천678원에서 220원 정도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신간은 체감 금액 차가 크지 않지만, 구간은 다르다. 온라인 서점에서 30% 안팎으로 할인된 1만원 정도에 살 수 있었지만 이젠 1만2천750원에 사야 한다. 3천원 정도 더 내야 한다는 뜻이다.

책값이 오르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 대형서점, 온라인서점은 '반값 판매' '파격 할인'을 내세우며 재고떨이에 집중했다. 실제로 스테디셀러나 유아용 도서 등 구매시기가 민감하지 않은 도서들에 구매바람이 불었다.

G마켓의 지난달 도서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서적의 종류별로 9~202% 증가했다. 신간 구매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인문도서(202%↑), 역사서적(77%↑), 청소년 도서(39%↑), 예술'대중문화서적(21%↑)이 판매를 주도했다.

11번가의 도서 매출 역시 최근 한 달간 평균 11%가량 증가했다. 대형서점, 온라인서점의 할인 경쟁에다 소비자의 사재기까지 맞물려 한동안은 구매가 뚝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도서소비자 이해도 반영되어야…

새 도서정가제가 소비자 편익을 높일지는 비관적이다.

14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도서정가제와 도서소비자의 편익 보고서'를 통해 "도서정가제가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도서정가제를 채택한 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 대비 평균 정가가 도서정가제를 시행하지 않는 나라보다 높았다. 또 베스트셀러 성경(bible) 가격과 미국 도서판매가격을 기준으로 각국 도서 가격을 비교한 결과, 도서정가제 채택 국가의 도서 가격이 높았다.

조성익 KDI 연구위원은 "새 도서정가제는 3년마다 정가표시 및 정가판매 등을 검토하도록 규제하고 있지만 필요하면 당장에라도 검토하고 고쳐야 한다. 배송비 등을 할인 대상으로 할 것인지, E-book에 대한 도서정가제 적용방식 등도 더 고민해야 한다"며 "검토과정에서 협의체를 구성하고, 도서유통시장을 운영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정비하면서 도서소비자의 이해가 반영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새 도서정가제가 시행돼 참고서와 실용서는 책값 거품이 빠질 가능성도 있다. 출판업계가 참고서나 실용서는 할인할 것을 염두에 두고 미리 가격을 올려놨지만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신학기 참고서 가격을 하향조정하기 때문이다. 일부 어린이 도서는 30~40% 할인 수준에서 가격이 재조정된다.

이지현 기자 everyday@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