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딸랑딸랑 12월

▲장혜승
▲장혜승

자선냄비 딸랑딸랑 12월이다. 암탉과 돼지가 좋은 일 해보자고 만났다. 나는 매일 알 하나씩, 너는 매일 햄 하나씩을 준비해서 배고픈 사람에게 주자고 암탉이 제의했다. 생각에 잠겼던 돼지가, 너는 힘 한 번만 주면 알을 낳을 수 있지만 나는 목숨을 내놔야 되는데 어쩌나 했다. 좋은 일 하는 일은 무산되었지만 참 따뜻한 유머다. 지금은 재난시대, 재난을 대비하는 프레퍼족까지 생겼다. 폭탄이 떨어져도 안전할 수 있도록 땅굴을 파서 한 삼사 년 동안은 거뜬히 살아갈 수 있는 시설을 완벽히 갖춘 아파트도 생겼다 한다. 아파트 한 채가 34억원이나 되지만 분양이 다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자선냄비 소리는 지상 어디에서 끝까지 딸랑일 것이다.

12월이었다.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 도착하니 한여름 속에서 캐럴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눈(雪)이 없는 나라 사람들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상상하는 것도 얼마나 멋진 그림인가? 마닐라에서 봉고차에 실려 하루 종일 달려 도착한 곳은 마캅싱이란 오지였다. 간호사와 미용사와 이발사도 함께 갔었는데 전기도 전화도 없는 곳, 열여섯 혹은 열일곱, 그 어린 것들이 갓난쟁이를 옆구리에 끼고 또 임신을 해서 배는 북산만 하고, 처음에는 그 모습에 놀랐지만 그런 모습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 곳곳마다 아이들이 바글거렸고 의료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상처에는 벌레들이 꼬물거리고 이빨은 거의 썩어 있었고 머리카락에서는 이가 뚝뚝 떨어졌다.

원두막 같은 비좁은 움막에서 그 많은 가족들이 함께 자는데 큰아이들은 원두막 아래 흙바닥에서 자고 있었다. 사람 생활이 아닌 짐승의 수준이었다. 아프고 굶는 것이 생활화가 된 불쌍한 아이들을 찾아 치료하고 깎이고 씻기고…. 그 아이들은 치료보다 나의 배낭에 든 과자랑 사탕에만 관심이 있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따라다니던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보이지 않던 날, 길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아이가 지프닝(필리핀 대중교통수단)에 치여 희생당한 채 거적에 덮여 있었다. 부모는 가해자에게 한화로 환산하면 약 2만원쯤의 돈을 받았고 사건은 깨끗이 마무리 되었다 했다. 그날 마캅싱의 서쪽은 피눈물로 오래오래 붉었다.

우리 잠자리는 널판때기로 겨우 짜 맞춘 작은 마루거나 긴 의자 정도였다. 마루 밑에는 송아지만한 개가 자고 있었다. 우리도 서서히 짐승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개미가 들어 새까만 밥을 버릴 수가 없어 단백질 덩어리라며 라면에 말아서 감사히 먹는 대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배운 것이 없어서 짐승처럼 살고 있었다. 3주라는 길고도 짧은 기간이지만 서서히 짐승에서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지금쯤 그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커 있을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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