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천 역로를 따라서 교통요지 뿌리찾기]<6>김산군 관아서 문산역까지 이중환 순시길

봉화대서 군수와 과하주 한잔…배천마을 이르니 점필재 발자취

27세의 젊은 도찰방 이중환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생면부지의 땅, 김천에 부임한 지 채 달포도 지나지 않았지만 활기 넘치는 역과 시장이 갖는 역동성, 삼산이수로 일컬어지는 아름다운 산과 하천을 품고 있는 이 고을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김천은 한반도 남부의 중앙에 위치해 일찍이 교통의 중심지로 부각됐는데 그중에서도 추풍령이 갖는 위상이 단연 으뜸이었다.

김천도역이 관할하는 속역 중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도성으로 연결되는 중심 역로였던 추풍령 방면으로 순시를 떠나는 이중환을 따라가 보자.

◆연화지(鳶 口+華 池)와 봉황대(鳳凰臺)

"자~ 오늘은 김산관아에 들렀다가 추풍령 방면으로 가 보자꾸나."

작내역과 장곡역을 순시하고 거창과의 경계인 우두령까지 이틀에 걸쳐 강행군을 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이중환은 다시 김산고을 순시에 나섰다.

아침 일찍 튼실한 역마를 골라 타고 수하 역졸을 대동한 채 노실고개를 넘어 남원(南院'지금의 김천시 부곡동 원골 일대)에 잠시 들렀다가 곧장 직지천을 넘어 김산군 관아 방면으로 길을 잡았다. 군수와는 부임 시 잠시 들러 인사를 나누기는 했으나 오늘 정식으로 예를 갖출 요량으로 도성에서 가지고 내려온 비단 몇 필도 단단히 챙겼다.

직지천을 건너 김산관아 방면으로 말을 몰던 이중환은 아담한 연못에 비친 정자의 그림자를 보며 탄성을 질렀다. 도성에도 좀처럼 보기 힘든 절제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말 고삐를 잡고 길을 걷던 역졸이 이중환의 탄성에 답하듯 "김산향교와 함께 이 고장을 대표하는 상징인 연화지와 봉황대입니다요"라고 귀띔한다.

연화지를 따라 걷다 보니 사방 3간의 2층 다락으로 만들어진 봉황대에서 누군가 이중환을 부른다.

이중환을 기다리던 이는 김산군수 박치원(朴致園)이다. 향리들과 함께 마을을 돌아보던 군수가 도찰방이 관아를 예방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길목인 봉황대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공 기다리고 있었소. 김산고을의 명물 봉황대에 올라 잠시 쉬어가시지요."

이중환이 봉황대에 오르자 박치원은 곧장 봉황대의 유래에 대해 풀어놓는다. "1700년 창건된 봉황대의 옛 이름은 읍취헌(邑翠軒)이라 했지요. 1707년부터 1711년까지 김산군수를 지낸 윤택(尹澤)이 부임하던 날 솔개가 봉황으로 변해 날아오르는 꿈을 꾼 후 연못을 솔개 연(鳶)자에 바뀔 화(口+華)자를 써서 연화지(鳶 口+華 池)라 이름 지었고 날아간 봉황의 방향이 읍취헌 쪽인지라 다락이름도 읍취헌에서 봉황대로 고쳤다고 합니다."

(송기동 김천문화원사무국장은 현재 대부분 인터넷 미디어에 검색되는 연화지 한자는 빛날 화(華)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는 '떠들썩할 화, 바뀔 와'(口+華)가 정확하다고 했다.)

이중환은 연화라고 하면 당연히 연꽃 연(蓮)자에 꽃 화(花)자를 썼을 것으로 생각했다가 박치원이 전하는 이야기에 신기해했다.(원래 봉황대는 김산관아의 북쪽인 지금의 김천법원 자리에 있었다. 1838년 군수 이능연(李能淵)이 지금의 자리인 연화지 중앙으로 옮겼다. 1718년 이중환이 연화지를 방문했을 당시에는 봉황대가 연화지와 떨어져 있었으나, 지금의 연화지와 봉황대 위치에 맞춰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해 가정을 곁들였다.)

◆김산군의 중심, 교동과 김산향교

봉황대에 올라 과하주를 곁들여 잠시 도성 이야기를 나눈 이중환과 박치원은 함께 김산향교를 거쳐 교동일대를 돌아보고 관아로 가기로 했다. 박치원은 "교동(校洞)은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동잠현(東岑縣)과 김산현(金山縣), 김산군(金山郡)의 관아가 자리했던 읍치(邑治)였으며, 김산이라고 하는 지명은 김천(金泉), 금릉(金陵)과 마찬가지로 예부터 이 고을이 금(金)의 주요산지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명의 유래를 설명했다.

원래 금산이라 했다가 병자호란 이후 이 고장의 선비들이 청나라가 금나라의 후예라 하여 금산을 김산으로 고쳐 불렀을 만큼 지명 하나에도 이 고을 선비들의 서릿발 같은 기상이 서려 있다는 것.

김산향교에 들어서니 외삼문 앞에 전교 이하 교수, 수인이 신임 도찰방을 맞이하며 예를 표한다.

전교는 "김산향교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정확한 창건연대를 가늠할 수 없지만 원래 신라 때 창건된 고산사(孤山寺)라는 절이 있었던 절터였는데, 조선이 개국하면서 향교 터를 물색하던 관아에서 읍의 중앙에 자리하고 명당으로 이름난 절을 허물고 향교를 세웠습니다"라며 "이후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1634년(인조 12년) 조마 강곡 출신의 진주 강씨 진사 강설과 아들 강여구가 대를 이어 중수했습니다"라고 내력을 알려줬다.

전교와 인사를 나누고 김산향교를 돌아 나오는데 박치원이 한마디한다. "김산향교의 학풍이 예전만 못하다고 합디다."

실제로 이중환이 김천역장으로 부임한 해인 1718년에 여이명(呂以鳴)이 쓴 '금릉지'(金陵誌)에 따르면 '전에는 동재, 서재에 유생들이 50~60명에 불과했는데 지금 와서는 100여 명이 넘고 향사일에는 고성으로 떠들고 천한 사람이 귀인을 능멸하는 등 망측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나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향교의 권위가 떨어지고 풍기가 문란해져 가는구나 싶어 이중환은 마음 한구석에 씁쓸함을 느꼈다.

◆노서하전형의 명당에 자리 잡은 삼락동

관아에 들러 박치원에게 예물을 전한 후 다과가 준비된 금릉관에 오르니 직지천을 중심으로 교동'삼락동 일대로 펼쳐진 드넓은 금릉평야가 장관이다. 이중환은 박치환과 다과를 나눈 후 헤어져 곧바로 삼락동으로 향했다.

동행하는 역졸은 "교동과 이웃하고 있는 삼락동은 승선(承宣) 벼슬을 지내던 수원 백씨 백귀선(白貴璇)이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대해 이 고장으로 낙향한 이래 대대로 수원 백씨들이 집성촌을 형성해 살고있습니다요"라고 마을의 유래를 설명했다.

박치원은 관아를 나서기 전 "삼락(三樂)이라는 지명은 옛날 이 마을의 선비들이 맹자가 말한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즉 부모와 형제가 무탈하고 하늘과 사람에 부끄러울 것이 없으며 뛰어난 제자를 얻어 교육시킨다는 군자삼락(君子三樂)을 이루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삼락동이라고 이름지었다고 전해진다"며 "마을 이름처럼 빼어난 선비가 많다"고 알려줬다.

특히 마을의 뒷산에 해당하는 구화산의 형세가 예부터 좌청룡, 우백호를 이뤄 마을을 감싸며 전면이 열린 길지이고 늙은 쥐가 밭을 향해 내려온다는 노서하전(老鼠下田)형의 명당으로 이름이 났다는 것이다.

◆점필재 김종직이 말년을 보낸 배천마을 경렴서당

삼락동을 지나 문산마을로 들어서니 떠돌아다니는 혼령에게 제를 드리는 여제단과 농사의 풍흉을 관장한다는 곡신(穀神)에게 봄'가을로 제사를 올렸던 사직단(社稷壇) 앞에서 여러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역졸에게 연유를 물으니 "이곳에서 절을 세 번 올리고 '무자(無子)요' 하고 고함을 지르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속설이 있어 수시로 사람들이 찾습니다요"라 답한다.

문산마을에 당도하니 입구에서부터 문산역의 역장과 역리들이 도열해 신임 도찰방을 영접한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 초에 역(驛)이 설치됨으로 해서 형성된 마을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신역(新譯)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고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문산역(文山驛)으로 바뀌어 기록돼 있다.

역졸은 "문산역은 통상 30리마다 역이 설치되는 관례를 깨고 김천역으로부터 불과 8리에 불과함에도 역을 설치했는데 이것은 영남사림의 지도자로 존경받던 점필재 김종직(金宗直) 선생이 1482년 관직에서 물러나 배천마을로 낙향해 있을 때 전국의 제자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김천역에서 이를 다 수용할 수 없어 부득이 이 마을에 간이역을 추가로 설치한 것입니다요"라고 한다.

"역시 점필재 선생이로구나."

이웃하고 있는 배천마을은 김종직이 퇴임 후 처가가 있는 봉계와 가까운 이 마을에 정착해 살면서 경렴당(敬濂堂)이란 서당을 개설함으로 해서 당시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마을이다.

오래전부터 존경해마지않던 점필재 선생의 흔적을 생각지도 않은 김산고을에서 마주한 젊은 선비 이중환은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공동기획 김천시

김천 신현일 기자 hyunil@msnet.co.kr

도움말=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참고문헌=디지털김천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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