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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사랑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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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승
▲장혜승

연말이 되면 전국 곳곳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모금운동이 열린다. 왼쪽 가슴 옷깃에는 그 어떤 장신구보다 어여쁜 사랑의 열매가 달린다. 사랑의 열매는 모양보다 뜻이 더 어여쁘다. 동그라미 3개는 나, 가족, 이웃을 의미하고, 빨강은 사랑의 마음, 열매를 하나로 묶은 녹색 줄기는 함께하는 사회를 이루자는 뜻이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 돕기에 동참하는 따뜻한 사람들로 인해 사랑의 열매 한 해 모금액은 4천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거금의 기부자, 근근이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하는 사람으로 인해 세상은 놀람과 동시에 많은 감동으로 훈훈한 연말이 된다. 그래서 사랑 나눔의 후광은 점점 더 밝아갔다.

그런데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무려 3천300만원의 국민 성금을 유흥비로 탕진한 것이 알려지자 곳곳에서 다른 성금의 비리들도 터졌다. 사랑의 열매가 아니라 비리의 열매라는 비판까지 쏟아졌다. 그 후 후원금과 성금들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공동모금회는 다시 태어나겠다고 깊이 사죄하고 신뢰를 복구할 수 있는 여러 개선안을 내놓았지만 국민의 마음은 차가워졌다. 그들은 착하고 건전한 다른 모금회와 따뜻한 마음마저 모두 더럽히는 큰 죄를 저질렀다. 몇몇 탐욕 자들로 인해 불우이웃은 피해자가 되었다.

우리 교회에서도 해마다 어깨띠를 두르고 모금함을 안고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추운 거리로 나갔었다. 근사한 가게를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외면을 당했고 난전에서 채소를 팔거나 손수레 호떡가게에서나 길 가던 사람들이 천원짜리 한 두 장과 좋은 일 한다는 칭찬까지 넣어주었다. 불우한 이웃이 불우한 이웃을 걱정해 주었다. 한데 모인 성금은 동사무소에서 얻어낸 자료들을 바탕으로 소년소녀가장이나 홀몸노인에게 전해지곤 했었는데, 한 번은 길 가던 남자 한 분이 성금함을 막아섰다. '아주머니! 아주머니들이 입고 있는 그 외투를 팔아서 불우이웃돕기 하지요'하고는 한참 노려보고 가버렸다. 얼굴이 화끈거려 다시는 모금함을 들고 거리에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의 분노를 나중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상해임시정부 시절 김구 선생 아들이 병에 걸려 위독했는데 마련해두었던 독립자금 일부로 아들부터 치료하고 다시 충당하자고 한 지인이 말했지만 김구 선생은 일절 거절하였고 결국 아들은 죽었다고 한다. 분명한 명분으로 모은 성금은 한 푼도 다른 곳에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어김없이 찾아온 연말이다. 구세군 핸드벨 소리가 호소로 들린다.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올해도 많은 성금이 모여 한 푼도 새나가는 곳 없이 온전히 불우이웃들에게 전해진다면 2014년은 평안히 저물겠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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