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춥긴 하지만 잠시 동성로를 한 바퀴 쭉 돌아보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여기저기 장식도 많이 붙어 있고 휘황찬란하게 전구를 감은 나무들을 볼 수 있다. 풍경은 벌써 크리스마스다. 그런데 귀를 열어보니 들리는 노래라고는 아이돌 그룹의 노래들이나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화제가 됐던 노래들뿐이다. 시각적 풍경은 크리스마스인데 청각적 풍경은 크리스마스가 아닌 이 풍경은 뭔가 낯설다.
◆'겨울음반'의 실종
대구 시내 한 음반매장에는 캐럴 앨범만을 모아 진열해 놓은 공간이 있었다. 대부분 미국의 팝 가수들이 부른 캐럴들인데 발매 연도를 확인해보니 2000년대 중반에 발매된 것들이거나 조니 캐시(Johnny Cash)나 도리스 데이(Doris Day)와 같은 옛날 미국 팝 가수들이 부른 캐럴을 모은 편집앨범들이 대부분이었다. 전시된 앨범 중 올해 발매된 앨범은 '겨울왕국'의 '렛 잇 고'(Let it go)를 부른 뮤지컬 배우이자 가수인 '이디나 멘젤'(Idina Menzel)의 '홀리데이 위시스'(Holiday Wishes) 정도밖에 없었다.
국내음반은 더 찾기 힘들었다. 진열된 앨범 중에 그나마 눈에 띄는 앨범은 '크레용팝'이 소속된 기획사인 '크롬엔터테인먼트'의 가수들이 모여 만든 '2014 크롬 패밀리 - 어 베리 스페셜 크리스마스'(2014 Chrome Family - A Very Special Christmas) 앨범과 성시경의 '윈터 원더랜드'(Winter Wonderland) 앨범이다. 이 음반매장의 관계자는 "올해는 이맘 때쯤 발매되는 신보 자체가 지난해보다 절반으로 줄었다"며 "대부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라 음반이 덜 팔리는 상황을 차치하고라도 앨범 자체가 덜 나와 '겨울 시즌'이 무색한 상태"라고 말했다.
디지털 음원이라고 상황이 다르지는 않다. 대표적인 음원차트 사이트인 '가온차트'에 따르면 이달 6일까지 집계된 디지털 음원 차트 100위 이내에 오른 곡들 중 캐럴은 고사하고 가수들이 낸 겨울 스페셜 앨범의 곡들을 찾을 수 없었다. 지난해 비슷한 시기 디지털 차트 100위권 내에 오른 캐럴 앨범과 겨울 스페셜 앨범 수록곡이 18개였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또 16일 현재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인 '멜론'의 일간 차트 50위까지 오른 곡들 중에도 올해 나온 캐럴 앨범이나 겨울 스페셜 앨범의 곡은 성시경의 '잊지 말기로 해'와 케이윌, 시스타, 정기고 등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부른 '러브 이즈 유'(Love is You), 바이브, 포맨과 같은 보컬리스트들이 만든 '나홀로 크리스마스' 등 단 3곡뿐이다.
◆캐럴이 매출을 이끌지 않는 현실
이처럼 크리스마스가 돼도 캐럴을 듣기 힘든 시대가 된 것은 불황이 지속되면서 캐럴이 더 이상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띄우는 무기가 되지 않는 현실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백화점과 같은 대형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연말 분위기를 내기 위해 백화점 내에 트는 음악들 중 캐럴의 비중을 올리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캐럴을 튼다고 매출이 오르지 않더라는 것이다. 대구 시내 한 백화점의 관계자는 "캐럴이 연말 분위기를 내는 작용을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루 종일 캐럴을 틀면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며 "80년대까지만 해도 백화점에 캐럴을 트는 게 일종의 마케팅 수단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손님들이 캐럴을 튼다고 큰 감흥을 느끼거나 매출로 연결되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음악을 듣는 방식이 '음반'에서 '디지털 음원'으로 옮겨가면서 음반이 더 이상 팔리지 않는 현실도 캐럴을 듣기 힘든 크리스마스를 만들었다. 예전에 길거리에 울려 퍼지던 캐럴은 길거리에서 테이프를 팔던 노점상들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음악을 듣는 방식이 바뀌면서 길거리에서 테이프를 팔던 노점상들은 거리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 때문에 지나가다가 들을 수 있었던 각종 크리스마스 노래들은 백화점이나 카페에 들어가야 겨우 들을 수 있게 됐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동성로 중앙 무대 근처에서 버스킹을 하는 젊은이들 중 누군가는 캐럴을 부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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