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크음악 전설들의 열정·로맨스·좌절·재기
# 1970년대 통제의 시대 '청년문화' 다시보기
'쎄시봉'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복잡하다. 명동 무교동에 위치해 있던 음악감상실 쎄시봉은 단순히 한 시대의 음악경향을 이끌었던 공간이 아니다. 서슬 퍼렇던 유신시대에 숨죽이고 고분고분하게 지내야 했던 청춘들의 분노 에너지가 응축되어 음악을 통해 분출되던 공간이다. 그곳은 바로 당대 젊은이들의 해방구였다. 한국 대중음악계에 갑자기 툭 튀어나와 흐름을 바꿔놓은 그곳에서 젊은이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통기타와 포크 록에서 시작한 '청년문화'는 문학과 영화, TV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통제의 시대였던 1970년대에 청춘들의 숨통을 틔워주었다. 가장 억압적인 시대에 가장 혁명적인 음악이 탄생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반추하게 한다.
영화 '쎄시봉'은 전설적인 그 이름, 음악감상실 쎄시봉의 탄생과 몰락을 그리며, 통기타 포크 음악 주역들의 역사를 현재에 아로새긴다. 영화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몇 년 전에 불어닥친 쎄시봉 열풍을 재연함으로써 우선 1차 베이비붐세대인 5060세대를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쎄시봉 전성기인 시기에 20대 청춘을 살았던 이들의 활약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어 2030세대 역시 보편적인 청춘의 열정, 로맨스, 좌절과 재기 스토리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영화는 전세대를 아우르는 힘을 가진다.
무엇보다 음악이 커다란 힘을 발휘한다. 영화는 세 번의 시기를 보여준다. 쎄시봉 주역들이 청춘의 정열을 불태웠던 1970년대, 조용히 중년의 삶에 충실했던 1990년대, 이들이 노년에 들어선 현재. 영화에는 쎄시봉을 둘러싼 사실을 바탕으로 그 위에 상상력으로 채운 허구의 이야기를 쌓아올려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고도 풍성하게 만든다.
쎄시봉의 스타였던 윤형주와 송창식의 트윈폴리오 준비 과정에서 원래는 쎄시봉 트리오로 계획되었으니 한 명의 가수가 더 있었다는 것은 팩트다. 제3의 팀원이 쎄시봉의 뮤즈였던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난 후 겪게 되는 젊음의 방황이 트리오의 미래를 바꾸고 쎄시봉의 쇠락을 야기했다는 것은 허구다. 우리가 몰랐었던 제3의 가수가 영화의 주인공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던 쎄시봉 역사 위로 펼쳐지는 허구의 인물과 그의 로맨스, 그리고 시대로 인한 아픔이 어우러진 이야기는 영화를 궁금하게 만들며 몰입하게 하는 기재가 된다. 이야기는 쎄시봉 전속 프로듀서였던 이장희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젊음의 거리 무교동 최고의 핫플레이스였던 쎄시봉에서 마성의 미성을 가진 윤형주(강하늘)와 타고난 음악천재 송창식(조복래)이 평생의 라이벌로 처음 만난다. 쎄시봉 사장(권해효)은 이들의 가수 데뷔를 위해 트리오팀 구성을 제안하고, 이장희(진구)는 우연히 오근태(정우)의 중저음 목소리를 듣고 그가 두 사람의 빈틈을 채워줄 숨은 원석임을 직감한다. 근태는 얼떨결에 트리오 쎄시봉의 멤버로 합류하게 되고, 그 시절, 모든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쎄시봉의 뮤즈 민자영(한효주)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를 위해 노래를 부르기로 결심한다.
'시라노: 연애조작단' '광식이 동생 광태' 등을 통해 수줍은 남자 로맨스에서 역량을 발휘한 김현석 감독이 '쎄시봉'에서도 수줍은 남자의 어긋난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펼친다. 중년의 오근태에 김윤석, 민자영에 김희애, 이장희에 장현성까지 멀티 스타 캐스팅은 화제를 가져오기에 충분하다.
아련한 1970년대 복고 분위기는 영화를 흥미롭게 하고, 음악이 가진 낭만적 노스탤지어 감수성이 만만치 않게 힘을 발휘한다. 판타지스러운 1970년대 장면은 현실감이 강조된 1990년대 및 현재 장면과 언밸런스하게 느껴지며,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구성이 영화를 조금은 낡아 보이게 한다. 하지만 세대 갈등의 골이 깊을 대로 깊어진 현재, 2030세대가 한국 대중문화의 전환을 모색했던 쎄시봉 포크 음악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무게감에 공감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영화의 가치는 빛난다.
<영화평론가>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