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평탄하게 흘러가는 인생이 어디 흔할까 싶지만 이 사람의 삶은 특히나 굴곡이 많아 눈길을 끈다. 지상파 SBS 공채 개그맨으로 시작한 후 오랜 무명생활을 겪다 욕설이 난무하는 인터넷 방송으로 유명세를 얻어 지상파로 재진입, 인기를 누리며 상승세를 타다 결국은 인터넷 방송 시절 발언이 문제가 돼 나락으로 떨어졌던 인물. 자숙기간을 거쳐 성공적으로 재기한 후 독설뿐 아니라 지식도 많은 MC로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다 아내의 빚보증으로 대중이 보는 앞에서 추락한 인물. 바로 예능 MC 김구라다. 가진 것 탈탈 털릴 위기의 순간을 맞아 공황장애 증세까지 호소하던 김구라가 지금 정신을 가다듬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심지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개그의 소재로 활용하며 꼿꼿하게 서서 몰아치는 바람을 견뎌낸다. '독설의 아이콘'으로서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
◆"우리 집 경매 들어가요" 비극을 희극으로
지난해 말 김구라는 돌연 공황장애 증상으로 입원해 대중을 놀라게 했다. 수차례 이어진 아내의 빚보증으로 발생한 경제적 위기가 원인이 됐다.
각 방송사의 주요 프로그램 MC 자리를 꿰차고 있었던 만큼 방송계에도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김구라의 공백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 주 정도 병원 신세를 졌던 김구라는 이내 자리를 박차고 나와 녹화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변함없이 '독한 혀'의 진가를 보여줬다.
입원 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나선 자리는 MBC방송연예대상이었다. 입원 후 방송활동을 중단한 지 12일 만의 일. 이날 김구라는 대상 후보로 지목됐지만 1부가 끝날 때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방송 관계자들뿐 아니라 대중도 '이런 자리에 나올 기분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상황. 하지만 2부가 시작된 후 청바지 위에 재킷을 걸치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김구라의 모습이 포착됐다. 시상식 참석을 두고 고민하다 결국 '정면돌파'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김구라는 뮤직토크쇼 부문 특별상을 받은 후 무대에 올라 부모님을 비롯해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힘든 분들 많은데 혼자 유난 떤 것 같아 죄송하다. 자업자득이다"라며 본인의 어려운 상황을 적절히 개그의 소재로 활용해 웃음을 줬다.
이후 이어진 방송활동을 통해서도 김구라는 스스로 자신의 어려움을 '중계'하며 웃음을 유도했다. 지난 1월 말 MBC '라디오 스타'에서도 김구라는 "내일 집이 경매에 들어간다"며 "아침에 손님이 오기로 했고 360만원부터 시작한다"고 말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실제로 김구라의 집은 전세라 경매에 부칠 수 없었던 상황. 본인의 집에 있던 각종 물건에 압류 스티커가 붙어 있었던 암울한 현실을 적절히 개그로 살려낸 것으로, 자칫 입을 닫고 있었을 때 쏟아질 온갖 루머와 기사를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까지 했다.
그 후에도 김구라는 같은 프로그램에서 "다행히도 경매에 들어간 물건을 내가 전부 낙찰받았다"며 "행복하다"라고 후일담을 전했다. 2월 초 JTBC '썰전'에서도 "아들 동현이가 가끔 방송에 출연해 돈을 버는데 그 돈을 아내가 쓰고 나는 열심히 일해 빚을 갚는다. 허리가 휠 지경"이라며 민감한 가정사를 개그 소재로 썼다.
◆셀프 디스, 대중 응원 박수 자아내
무명 시절 타인을 향해 독설을 퍼부으며 이름을 알렸던 김구라가 자기 자신을 향해 '독한 혀'를 들이대다니 이것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똑똑한 판단이다. 살겠다고 남을 헐뜯으며 고층으로 올라갔던 사람이 이젠 다시 자기 몸뚱이를 밑바닥에 떨어트려 아래층에 살고 있는 '주민'들로 하여금 동질감을 갖게 한다. 개그맨으로서의 프로의식을 보여주면서, 특히나 '독설'이란 주특기를 버리거나 괜히 동정심을 유발하지 않고도 지켜보는 이들로부터 응원의 박수를 받아낼 수 있는 영리한 방법이다.
앞서 신동엽도 사업실패로 큰 빚을 지고 오롯이 방송 일에만 전념하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했다. 그 결과 일반인들은 죽어서까지 대대손손 물려줄 큰 빚을 수년 안에 거의 탕감했다. 몸값이 워낙에 센 스타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아무리 빚 때문이라고 해도 이미지로 먹고사는 방송인이 프로그램과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얼굴을 보인다는 건 자칫 위험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김구라 역시 당분간 신동엽과 비슷한 길을 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주 수입원인 방송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고백하기 힘든 가정사와 경제난까지 개그 소재로 활용하는 것 역시 '앞으로도 열심히 방송활동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스스로를 향한 독설 역시 자신의 캐릭터를 더욱 공고히 하면서 방송계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확신하건데, 김구라가 공황장애로 입원했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 대중은 당황했을 것이다. 인상 구겨가며 삐딱한 시선으로 독설을 내뱉고 한편으로 돈 얘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이던 김구라에게 공황장애라니. 대충 매치시켜봐도 참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그 삐딱한 시선과 말투로 스스로 상황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김구라의 모습에 대중이 박수를 보내는지도 모른다.
◆독설로 성공하고, 망하고, 또 주목받고
앞서 김구라는 2002년 딴지일보 인터넷 방송 시 위안부 피해자들까지 비하했다가 10년이나 지난 2012년에 이 발언이 문젯거리로 불거지면서 방송활동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JTBC '썰전' 등 시사 토크 기반의 프로그램에서 '뭔가 좀 아는 방송인'의 이미지를 쌓아올리며 재기했다. 무사히 돌아왔기에 망정이지 활동중단을 선언할 당시만 해도 '재기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란 말이 나올 만큼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이었다.
그만큼 인터넷 방송 당시 김구라의 입에서 나온 말들의 수위는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이 지면을 통해 다시 꺼내놓기 민망한 단어와 문장들이 매회 방송에서 쏟아졌고 이 '막말 방송'으로 김구라는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막말방송' 전에 김구라는 그저 무명 개그맨일 뿐이었다. 자동차 영업에 과일 판매 등 온갖 직종에 손을 대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겠다고 에로 연극을 제작했던 일화 역시 유명하다. 궁핍한 와중에 시작하게 된 일이 인터넷 방송이었고, 정식 방송이 아닌 관계로 심의가 없어 그 쌓인 울분을 토해내기에 적합했다. 방송인으로 성공해 지상파에 재진입할 거란 생각도 그 당시엔 하지 못했을 터. 그런 계산까지 했더라면 당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이효리의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고 문희준을 세상에 둘도 없는 '잡놈'으로 만들어버리진 않았을 테다. 결국엔 '뜨고 난 뒤'에 자신이 그렇게도 '씹었던' 이들을 하나둘씩 만나 사과하는 게 일이 됐다.
툭하면 불거져나오는 '과거의 발언' 때문에 김구라가 움츠러들었던 적도 있다. 쉴 새 없이 내뱉던 독설이 줄어들고 젠틀한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이도 저도 아닌 캐릭터로 프로그램의 재미를 떨어지게 하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원래의 모습'을 부각시키면 '이젠 질렸다'는 반응이 나오곤 했다.
지금, 스스로를 향해 독설을 내뱉는 단계까지 온 김구라는 캐릭터에 대한 혼돈의 시기를 확실히 지나온 것처럼 보인다. '과거'로 인해 반성하고 고민하던 시기도 지났다. 관건은 끝까지 레이스를 마칠 수 있는 '체력'이다.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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