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가족의 울타리

여전히 달빛 밝은 밤. 톱니바퀴가 뒤엉키는 시곗바늘 초침을 따라 잠자리 앞을 서성일 때, 명쾌한 소리를 내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한 통이 왔다. 가족여행지를 추천받고자 하는 사촌오빠의 연락이었다. 내가 전국을 유람하며 얻은 것은 바람을 실은 사진 몇 장들과 식도락을 추천할 만한 맛집들이 전부인데, 이건 배낭여행으로 일궈놓은 경험들이라 가족여행이라는 단어가 어쩐지 달콤하게 들렸다. 부모님 칠순잔치 기념으로나 거행될 연중행사를, 짐꾼과 운전기사를 자처하는 것은 물론 아이들의 단기방학까지 쪼개어 가족여행을 준비하는 가장의 모습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행복이란 우리 안에 있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자녀들에겐 정서적인 가족의 울타리가 필요하다. 네 명이 모이면 한 명이 이혼하는 꼴로 편부모가정이 많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속에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가정의 울타리를 깨고 무엇보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상처와 불안감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미혼모나 편부모가정의 홀로서기가 유교적인 가치관과 편견의 시각들과 부딪치는, 너무나 뼈저린 사회가 아닌가. 두 남녀가 만나 결혼을 지키는 과정이 아무리 험난하다 해도 이혼은 온전히 둘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로 깨지는 것이다. 상처받는 것은 결국 결혼을 지켜본 가족과 자녀들의 몫이 아니겠는가. 결혼이 집안과 집안 사이의 결속관계로 시작되는 것이라지만, 밀도 있는 가족사를 쓰기 위해 가족은 속칭 '시월드'라는 집안에서 분리된 핵가족의 분원으로서 결속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편에게도 출가외인이란 말을 써야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제2의 IMF라고 할 만큼 경기 탓하기 좋은 요즘, 빈번하게 이혼위기가 오가고 있을 틈에도 가족여행이라는 현명한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사촌오빠에게 격려를 보내고 싶다. 그것은 연봉이 넘쳐나거나 생활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다. 가족을 아끼는 마음이 행복을 생산하는 근원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보다 돈이 귀한 사회가 되면서 가장에게 일 중독을 독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나라가 힘들 때 허리띠를 졸라매고 금 모으기 운동을 했다. 태풍과 비바람이 몰아치는 혹우한 순간들이 와도, 힘들 때일수록 가족은 울타리를 단단하게 동여매야 한다. 유행처럼 번지는 이혼위기에도 마음을 다잡는 사랑의 말 한마디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이 생경하게 들리는 '핵가족여행'에 가이드를 자처하고 도시락처럼 끼어가려고 생각하니 가슴이 콩닥콩닥 용솟음친다. 도시락 가이드가 추천하는 노래 가사 한 구절을 소개한다.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우리 가는 길이 아침 햇살 비치면 행복하다고 말해주겠네. 이리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지 안 (뮤지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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