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헛구호에 그친 지방대 살리기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어느덧 2년이 훌쩍 지났다. 출범 당시 현 정부가 내세운 고등교육정책의 핵심 과제는 '지방대 살리기'였다. '지방대가 살아야 지역이 살고, 국토균형 발전도 이룰 수 있다'는 국정 철학이 담겨 있다.

안타까운 현실은 현 정부의 이 같은 국정 철학이 헛구호에 그치고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지방대 육성 의지가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는 사실은 이달 3일 출발한 대학구조개혁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대학구조개혁은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한 국정과제로 요약할 수 있다. 교육부가 전국 모든 대학을 평가해 입학정원을 감축하고, 부실 및 퇴출 여부까지 결정한다.

문제는 평가 방식이다. 대학구조개혁을 위한 주요 평가지표로 도입한 학생 충원율, 취업률, 교원 확보율 등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인(In) 서울' 현실을 고려할 때 수도권 대학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교육부가 최종 확정한 학생 충원율 등 수도권 대학에 유리한 평가지표의 배점은 지난해 9월 공청회 당시의 최초 안보다 더 높아졌다.

이에 전국 지방대 현장에서는 "대학구조개혁이 아니라 지방대 살생부(殺生簿)"라는 아우성이 빗발치고 있다. "사람과 일자리와 돈이 수도권으로 몰리는데, 경제논리에 근거한 획일적 평가는 지방대 죽이기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선 지방대의 선택은 또다시 '인(In) 서울'로 귀결되고 있다. 교원과 학생 모집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수도권에 입성해 대학구조개혁을 비켜가려는 것이다.

실제 대학교육연구소가 교육부와 지자체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2010∼2015년 대학 캠퍼스 이전 계획을 파악한 결과, 이전 계획을 수립한 대학 20곳 중 8곳이 수도권으로 이전했거나 이전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경북에서 수도권 이전을 계획하고 있는 곳은 영주 동양대학교로, 2016년 3월 본교의 40%를 북서울(동두천) 캠퍼스로 이전한다. 동양대는 지난 2013년 동두천에 제2캠퍼스 조성을 위한 위치변경계획을 승인받은 뒤 미군 공여지인 캠프캐슬 터를 이전대상지로 선정했다.

대학캠퍼스의 수도권 이전은 단순한 캠퍼스 이전에 그치지 않는다. 학생들이 떠나간 지방 도시에는 인구 공동화가 발생하고, 주변 상권이 무너진다. 지난 2004년 가야대가 캠퍼스를 이전한 고령의 경우 지역 경기 전체가 가라앉고 학교 주변이 황폐화됐으며 인구도 10% 이상 빠져나가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대학구조개혁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명제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학구조개혁의 본질이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 대학 경쟁력,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경제 논리에 근거한 획일적 구조개혁은 수도권 집중화를 가속화하고, 지방과 수도권의 빈익빈 부익부를 고착화해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역 대학 관계자들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대학 정책을 수립하지 않고 지방대학에 불리한 구조조정이 계속 추진되면 학생 충원율을 높이려는 지방대학들의 수도권 이전 추진은 앞으로도 봇물을 이룰 수밖에 없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제 '지방대 살리기'라는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대학구조개혁을 고민해야 할 때다. 지방대가 불이익을 받지 않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정부는 갈수록 의심받고 있는 지방대 육성 의지를 이 기회에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우선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의 여건 차이를 고려한 평가지표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오는 8월 말 대학구조개혁 결과에 대한 최종 발표까지 지방대가 차별받지 않도록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동시에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구조개혁법에 지역과 대학별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지방대가 살고, 지역이 살아 국토균형 발전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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