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배려하는 동화 덕분에 주례 데뷔
성철 스님 "자네 아비처럼 살게나" 감동
결혼식은 유치한 이벤트 아닌 혼례예식
자잘한 고단함 견디는 삶의 시작점 돼야
얼마 전 어느 결혼식에서 신랑의 선배인 부장판사가 주례를 보았다. 혼인서약을 받으며 "두 분은 내가 묻는 말에 거짓 없이 정확하게 대답해줘야 합니다"라고 하자 하객들은 피의자들이 결혼하는 거냐고 킥킥댔다.
하긴 수학교수의 주례에서는 "결혼에서의 수학은 신비합니다. 1+1은 2가 아니라 완벽한 1이 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고, 영화감독은 "결혼은 네버엔딩 스토리로 시작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러브 액추얼리입니다"라고 한다는 우스갯말이 생각난다.
내가 주례를 본 것은 20여 년 전이다. 원래는 사회자였다. 주례 선생의 교통사고로 꿩 대신 닭 신세가 되어 주례석에 선 것은 그렇다 쳐도 문제는 주례사였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더니 방송에서 들은 이어령 선생님의 외국 동화가 마침 떠올랐다. 서양 산골마을의 예쁜 신혼부부 얘기다. 신랑은 산에 올라 귀한 열매나 잎새 또는 뿌리를 캐서 마을 장터에 팔아 신혼은 아름다워로 살고 있었다. 그날도 산에 오르는데 꽃사슴이 숨차게 나타나 다급한 목소리로 사냥꾼 무리에게 쫓기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다.
어쨌든 목숨을 구한 꽃사슴이 은혜를 꼭 갚겠다며 3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소원은 두 부부만 빌 수 있었다. 신랑은 신바람 나게 집으로 달려와 신부에게 꽃사슴 얘기를 했다.
늘 차분하고 사려 깊던 그녀가 왠지 시큰둥하게 말했다. "에휴, 난 배가 너무 고파서 소시지나 가득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소시지가 마구마구 쏟아졌다. 금은보화나 돈벼락이라 했어도 될 것을 며칠 후면 상해버릴 소시지 얘기를 한 아내가 너무 원망스러워 착한 신랑이 그만 이렇게 소리쳤다.
"소시지가 그렇게 좋으면 평생 입에 달고 살아!" 그 말이 끝나자마자 신부 입에 철커덕하며 소시지가 매달렸으니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부부는 사려 깊지 않은 말, 상대를 배려하지 않은 말을 한 것을 후회했지만 소원은 한 가지만 남았다. 잠시 후 신랑이 마지막 소원을 간절하게 빌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입을 막고 있는 저 무지막지한 것을 빨리 떼어 내 주십시오." 그 주례사 덕분에 나의 주례 데뷔는 화려(?)했다.
주례사도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해야 한다. 어느 판사님의 글을 인용하기도 했다. 햇병아리 같은 신혼부부가 이혼을 하겠다고 왔더란다. 무슨 사연이냐고 했더니 신부가 쫑알쫑알 얘기하는데…. 어느 휴일 신랑이 감자를 삶아 달라기에 소금과 설탕을 함께 주었더니 간장을 달라더란다. 왜 그러느냐고 하니 감자 찍어 먹으려 한다고 신랑이 말했다. 세상에 촌스럽고 무식하게 무슨 간장 타령이냐고 신부가 말하자, 신랑이 당신네는 어떻게 먹느냐고 물었고 소금과 설탕을 섞어 먹는다고 했다나.(우리 집도 그렇게 먹는다) 그 문제로 티격태격 싸우다가 이혼하자고 달려왔다는 것이다.
판사님이 말했다. "이런 철딱서니 없는 친구들 같으니, 삶은 감자 어디에 찍어 먹든 뭔 상관이여, 우리 집은 막된장에 찍어먹는다고! 가서 다시 잘들 살아." 짧지만 명판결 아닌가.
성철 스님은 주례를 한 번만 보셨다는데, 사연이 있었다. 아끼던 제자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버려 상심이 컸었다고 한다. 20여 년 후 한 젊은이가 찾아왔는데, 결혼을 앞둔 그 제자의 아들이었다. 주례사는 딱 한 말씀이었다고 한다. "자네를 보니 자네 아비가 생각나네, 자네 아비처럼만 살게나, 단 오래오래도록 말일세." 울림이 있는 언행에는 단단한 기운과 단순한 진리, 그리고 단아한 기품이 담겨 있다.
결혼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주례 없이 신랑 신부가 예식 진행을 한다. 서로에게 띄우는 사랑 편지를 낭독하고 양가 부모님들이 자식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덕담을 해주는 풍경은 정겹고 흐뭇하다.
반면 신랑 체력 테스트한다고 팔굽혀펴기 시키고, 신부에겐 "아이 좋아"라고 하라는 것이나, 장모님 업고 식장을 뛰어다니라 하고 만세삼창 외치며 깔깔 호호대는 것은 절대 좋은 풍경이 아닌 것 같다.
결혼식은 유치한 이벤트가 아니라 단아한 혼례 예식이 아닌가. 또한 자잘한 고단함도 견뎌 내야 하는 여정의 시작이다. 결혼을 하면, 세 개의 반지(Ring)를 갖게 된다고 한다. 약혼반지와 결혼반지. 그리고 Suffering(고난)의 Ring 말이다.
(성우·서울예술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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