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세상을 펼치는 책장

유 가 형
유 가 형

매일 40여 명이 자살하는 나라가 있다. 우리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자살률이 1위다. 그것도 8년 연속 1위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평균 자살률보다 2.6배나 높다. 또한 20대 전체 사망자 중 절반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화려한 경제성장에 가려진 짙은 그늘이다.

보통 경제적인 손실을 보거나, 우울증을 겪거나, 인간관계에서 깊은 절망감을 느낄 때 사람들은 자살을 생각한다고 한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 직장, 공동체 등의 인간관계 속에서 삶의 가치를 느끼는데, 의미 있는 사람들로부터 관계가 단절되었을 때 얻는 치명적인 절망감이나 공허감이 자살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자아 강도, 즉 마음의 힘이 약한 사람은 위기에 더 민감하다. 우울증의 자아 강도가 만일 1㎏이라면, 그것이 깊어질 경우 10㎏ 이상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그러니 자아 강도가 약한 사람이 무게감을 느꼈을 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나 절망감에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상담실은 어떻게 보면 부끄러움을 보여주는 비밀스런 장소다. 그렇기에 비밀이 보장된다. 세상을 향해 화가 난 사람이 화를 마구 퍼부을 수 있는 곳도, 개인적인 온갖 하소연을 쏟아 낼 수 있는 곳도 바로 상담실이다. 그래서 상담실은 마음의 찌꺼기를 받아내는 곳이다. 병원에서 청진기로 진찰도 하지만 환자의 배설물을 통해 그 사람의 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찾듯이, 상담자들도 내담자들이 뱉어내는 말, 즉 그 배설물을 통해 말할 수 없이 많은 뭔가를 얻는다.

내담자는 속에 꽉 차 있는 것을 쏟아내며 후련함을 느끼고, 상담자도 자신을 키울 수 있는 밑거름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상담자와 내담자는 상부상조의 관계이며, 상담은 동반상승의 기회다. 상담자가 큰 나무로 자라야 그늘을 드리울 수 있고, 내담자가 그 그늘에서 잠시 쉴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주고 싶어도 내가 크지 않으면 줄 그늘이 없어지게 된다. 내가 주기 싫어도 크게 자라면 자연히 그늘을 드리우게 되는 것처럼, 면벽하고 앉아 중얼거려도 뱉고 나면 속이 시원한 것처럼, 들어만 줘도 내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내담자는 묻고 또 스스로 답을 이야기한다. 사실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상담실은 내가 모르는 세상의 장을 펼쳐보는 책장이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넓은 그늘을 가진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는다. 누구에게나 넓은 그늘을 줄 수 있는 봉사자가 되기 위해서는 책으로 간접 경험을 하든 실제로 경험을 하든 영양분을 많이 섭취하고, 그 지경을 넓히는 것이 필수적이다.

(시인·대구생명의전화 지도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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