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는 풍족한 섬/사키야마 가즈히코 지음/이윤희'다카하시 유키 번역/콤마 펴냄
인생에서 연(緣)은 삶을 송두리째 뒤바꾼다. 저자도 1980년 9월 휴가차 필리핀으로 가 다이빙을 즐기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점심을 마치고 섬을 둘러보기 위해 떠나고, 배 안에는 저자와 안내를 맡은 도돈만이 남았다. 그때 도돈이 아득히 먼 곳에서 떠오르는 작은 섬을 가리키며 "저 섬은, 지금 매물로 나와 있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섬이야"라고 말했다. 도돈에 대한 신뢰가 컸던 저자는 "꼭 가보고 싶다"라고 답했다. 그렇게 저자 가즈히코는 카오하간 섬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얼마일까?"
"200만 페소 정도라면 살 수 있지 않을까?"
1페소에 5엔 정도 되니 1천만엔(현재 한화가치 약 6억원)이다. "뭐, 그래? 그럼 저축해둔 돈으로 살 수 있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생각하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이국의 섬을 통째로 매입하려고 한 이는 어떤 사람일까? 뜻밖에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1959년 저자가 대학을 졸업했던 시기는 매우 힘든 불황기였고, 대부분의 회사들이 채용을 중단했다. 졸업 석 달 만에 겨우 일본 출판사 고단샤에 취직해, 요즘으로 말하자면 여성 패션 잡지 편집자로 일했다. 1964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귀국 후에 일본 문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고단샤 인터내셔널 설립에 참여해 20년 이상 근무했으며, 12년 동안은 미국 주재원으로 활동했다. 퇴직을 결심한 1987년 6월, 52세였던 그는 중역의 자리에 있었다.
"중역이 되고 나니, 책임자로서 조직을 관리하는 데 소모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모회사와 자회사의 관계, 출세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과의 충돌 등 그다지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사건들과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은 즐겁게 일했고 회사에도 충분히 기여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질 때쯤 '내가 경험한 것을 가지고 좀 더 단순하게 생활하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카오하간 섬의 토지소유권이 이전된 1988년 6월, 저자는 어쨌든 섬에 이주해서 일 년 정도 살아보자며 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또 걸림돌이 생겼다. 그해 9월 섬으로 출발하기 직전 뉴욕의 친구로부터 도쿄의 외국계 출판사 경영을 맡아달라는 절실한 부탁이 있었다. 그 뒤로 바쁜 업무 중 틈을 내서 연중 몇 번을 단 며칠 동안만 섬에서 지내기를 반복했다.
"이대로 출판사 경영을 계속할까도 생각했습니다. 책임 있는 업무였고, 보상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충분했습니다. 책임 있는 일을 하며 남쪽 나라 작은 섬에 별장을 가지고 여가를 즐긴다는 것도 멋진 일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저자가 모든 일을 던져버리고 섬으로 떠난 나이는 53세였다. 그런데 섬에는 300여 명의 토착 주민이 살고 있었다. 대부분 몇 세대 이전부터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필리핀 사람들의 의견은 "토지를 내어놓으라고 하고 이주시켜라"는 것이었다. 섬 주민들은 현재 토지 불법 점유자로서 섬에 대한 아무런 권리도 없이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섬을 이용할 계획이라면 지금 시점에서 이주시키는 것이 문제가 남지 않는다"라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섬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 책은 저자가 카오하간 섬에서 겪은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시각적이고 분명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또한 지속적인 지구 생존을 위해서 다른 생명과 공존하고 자연 속에서 풍족하게 살 수 있는 삶의 가치와 실천적 생활 방법이 담겨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남쪽 나라 꿈의 섬에 사는 어떤 남자의 삶을 '부러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저자의 세계관을 접하고 나면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248쪽, 1만3천원.
석민 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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