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본 지식인까지 '침략전쟁 변명' 기가 찰 노릇…『국가와 역사』

국가와 역사/시오노 나나미 지음/오화정 편역/혼 미디어 펴냄

'로마인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일본인들과 일본 정치가들을 향해 '쓴소리'를 가한 책이 나왔다. 세계적 강국이며, 다양한 방면에서 성공을 거둔 일본이지만, 작가는 모국에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끼는 모양이다. 일본을 향한 작가의 쓴소리는 한때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우리 역시 귀담아 새겨야 할 부분이다. 이 책 '국가와 역사'가 '일본이 가야 할 길'이라는 제언이라고 볼 수 있고, 일본이 가는 길과 우리나라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시오노는 "일본에 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고령화 때문이 아니다. 사회 지도층의 정신 자세가 문제다. 떠안고 가야 할 것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하는데, (지도층이) 그렇지 않은 게 문제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일본의 지도자들은 1980년대 초부터 경제적 번영을 누리면서도 세계 운명의 일익을 일본이 맡겠다는 기개가 없었다. 이같이 한 발 뒤로 물러서는 자세가 사회에 전파되고 말았다"며 일본은 좀 더 역동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은이는 '전쟁의 본질'에 대해 "(로마 역사 이야기를 쓰다 보면 전쟁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로마인 입장에서 보면 진공이고, 법률과 인프라의 대명사인 로마 문명의 진출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격당한 갈리아, 브리타니아, 이스파니아,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지역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명명백백 침공이자 침략이다"고 말한다. 요컨대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단어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독자는 일본의 침략 전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시오노는 일본의 태평양 전쟁을 침략전쟁으로 보지 않는 듯하다.)

시오노는 '야스쿠니 신사'와 관련해서 "(제2차 세계대전을 전시한 유슈칸은) 일본 관점의 역사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전시관이었다. 궁지에 몰려 선택의 여지없이 가야했던 길이 일본에게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노라고 주장하는 게 전시의 목적이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전시는 꽤 훌륭한 기획이었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야스쿠니 신사를 두고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논자들이 이런 시설에 대해 적이었던 나라들도 납득할 만한 역사인식, 바꿔 말하면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며 학술적인, 그래서 옳다고 여겨지는 역사인식을 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그런 요구라면 학문적인 장에서 논해야 할 일이지 죽은 자와 산 자의 만남의 장(야스쿠니 신사)에 대고 요구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오노는 "콘스탄티노플 함락, 로도스 섬 공방전, 레판토 해전 등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충돌한 전쟁을 전시한 곳 어디에도 양쪽 주장을 공평하게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시설은 없었다.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와 미국의 스미소니언박물관, 중국과 한국의 역사박물관 등 동종시설을 다 둘러보는 게 시나브로 진상을 알게 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참 페이지를 지나서 덧붙이기를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이룩한 대동아공영권이 100년을 이어갔다면 침략전쟁이라는 비난을 듣지 않았으리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시오노는 '정복이 오랜 시간에 걸쳐 뿌리를 내리려면 상당한 기교, 즉 정치적 지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실패로 끝난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시오노는 "일본이 침략전쟁을 저질렀다, 아니다, 하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일본이 패했다는 사실 하나로 그 전쟁이 침략전쟁으로 간주 된다"고 말한다. 그는 '전후 일본을 돌아보아야 한다. 전쟁을 모르고 자란 세대에게 어떻게 하면 일본이 두 번 다시 지는 싸움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오노의 역사 인식은 기가 찰 노릇이지만, 냉정한 현실인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전쟁을 헌법으로 금지한 현대 일본에 대해 "위급할 때 철석같이 믿었던 동맹국이 도와주지 않으면 일본은 국제적으로 고립당할 우려가 있다. 석유도 나지 않고, 민주화도 필요 없는 일본을 지켜주려고 미국이 자국의 젊은이들을 희생시키는 데 흔쾌히 나설 리가 없다. 두 번 다시 지는 싸움을 하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 우리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의 재무장을 바라보는 일본 지식인의 인식과 한국인의 생각이 이처럼 다르다.

일본어 원제목이 '일본인에게 - 국가와 역사편'인 만큼 이 책은 일본의 정치 현실과 사회 분위기를 꼬집은 내용이 많다. 아베 신조 정부의 '퇴행적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데, 다만 2007년 참의원 선거를 앞둔 무렵 쓴 글에서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패한다고 하더라도 아베 씨는 총리 자리에 계속 앉아 있어야 한다. (그에게 불만이 있는데) 그는 온갖 책략이 난무하는 정치계의 리더치고는 지나치게 성실하다고 할까 너무 단순하다. 아베 씨는 총리로서 감성과 이성을 냉철하게 나누어 구사할 줄 아는 기술의 중요성에 무관심해 보인다"고 애정어린 질책을 가한다.

아베 총리가 재기에 성공했고, 승승장구하는 바탕에는 일본인의 '염원'이 깔려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읽을 수 있다. 현대 일본을 향한 시오노 나나미의 외침은 한국인에게는 '경종의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372쪽, 1만6천800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