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받는 지배자/김종영 지음/돌베개 펴냄
미국에서는 열등했던 한국 유학생이 한국에서 엘리트 지식인으로 변신하는 '유학교육의 구조'를 분석한 책이다. 책은 미국 유학파는 어떻게 한국의 학계와 기업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는지, 어떻게 기득권을 유지하는지 탐색한다. 또 미국 유학파 엘리트가 한국과 미국 사이에 어떤 상황과 위치에 놓여 있으며, 그로 인해 그들이 누리는 것은 무엇인지, 한계는 무엇인지, 그들의 독특한 정체성은 무엇인지 파악한다.
2012∼2013년 기준, 미국에 유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은 7만627명이다. 중국인 23만5천여 명, 인도인 9만6천여 명에 이어 세계 3위다. 그러나 전체 인구에 대비해 볼 때, 즉 중국(13억 명), 인도(12억 명)에 견줘 볼 때 인구 5천만 명인 한국의 미국 유학생 비율은 중국의 7.8배, 인도의 17.5배에 이른다. 한국이 유독 미국에 유학생을 많이 보낸다는 것이다.
미국에 우수한 대학이 많은 것은 통계적으로도 나타나 있다. 상하이 쟈오퉁(교통) 대학이 매년 발표하는 대학의 글로벌 순위를 보면 100위 안에 드는 대학의 절반이 미국에 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유익하다. 그러나 지은이는 '유독 한국에서 미국 유학이 대세를 이룬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독특한 문화와 질서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연구중심' 대학은 20세기 이후 학문의 패권을 쥐고 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새롭고 중요한 지식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는 다시 실력 있는 학자들이 미국으로 유입되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학은 자연스럽게 글로벌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었다. 한국의 대학은 미국의 대학에 비해 후진적이다. 미국과 한국대학 간의 우열 관계는 미국 학위가 한국에서 더 큰 가치를 지니는 한 원인이 되었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미국은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선진국의 전형으로 한국사회에 각인됐다. 한국 학생들이 유독 미국에 유학생을 많이 보내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다.
그런가 하면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영어는 한국에서 언어자본이자 문화자본으로 군림하게 됐다. 지은이는 "그런 연유로 미국 유학파는 미국에서는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열등한 유학생'이었고, 학문적으로 주류에 진입하지 못하는 이방인이었으나 한국에서는 미국대학에서 배운 지식으로 생존을 도모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말한다. 미국과 한국 사이의 '트랜스내셔널' 격차와 우열이 심화할수록 미국 유학파가 한국사회에서 갖는 상징자본의 가치가 커지고, 직업 기회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미국 학위가 한국에서 높은 가치를 갖는 또 다른 배경에는 학벌체제라고 하는 한국적 특수주의가 큰 영향을 발휘한다. 한국의 교수 시장에서 대학을 어디 나왔느냐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학벌체제는 끼리끼리 문화를 만들고 파벌을 형성한다. 학위가 일종의 '멤버십'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글로벌 명성이 높은 미국대학의 박사학위는 학벌사회인 한국에서 부가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 것이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취득한 학위는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다른 가치를 지닌다. 한국 직장에서 미국학위는 다른 경쟁자들보다 우위를 확보하는 코즈모폴리턴 문화자본이다. 반면 미국 직장에서 한국인은 불완전한 영어를 구사하며, 미국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사람,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조직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한국인이 가진 미국 학위가 미국에서는 특정한 능력을 보유한 자격증 정도로 인식된다. 또 같은 동양권 국가인 일본에서도 미국 학위가 가지는 가치는 한국과 다르다. 한국에서처럼 영향력이 막강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책은 '실력주의와 과학주의가 힘을 쓰지 못하고, 학위라는 문화자본이 멤버십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뛰어난 실력이 있어도 학계에 진입하지 못한다. 이런 폐쇄적 구조는 한국 학계를 더욱 비민주적이고, 인맥과 가부장적 유교문화, 조직문화 등의 특수주의가 팽배하는 집단으로 만든다'고 지적한다.
지은이는 "(미국 유학파가 한국대학을 더욱 폐쇄적으로 만들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한국 대학의 변혁을 이끌어낼 해방자 역할을 미국 대학에서 찾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 대학은 학벌주의를 억지하고, 실력주의로 교수진을 선발하며, 폐쇄적 파벌주의, 위계질서, 검증되지 않은 전문가 등이 난무하는 한국적 특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미국 대학이 한국 대학의 모범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미국 유학파 엘리트는 (미국 대학교육이라는) 양화(良貨)를 가지고 와서는 한국적 악화(惡貨)를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배타적 생존을 도모하고, 한국적 악화를 재생산하는 데 공모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지은이 김종영은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며, 그 자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유학파다. 318쪽, 1만6천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