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은 지난 2013년 7월 12일부터 8월 15일까지 '육아, 아빠도 함께하자-아빠를 집으로'라는 기획특집을 진행한 바 있었다. 이 특집에서는 대구경북의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의 육아휴직 실태를 점검하고 육아에 대한 복지혜택이 잘 마련돼 있는 북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남성들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의 인식개선과 실효성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기획이 나간 지 2년이 다 돼가는 지금, 대구경북의 아빠들은 집에서 육아를 함께하고 있을까? 대구경북의 남성육아에 대한 인식은 얼마나 변화가 있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직 멀었다. 지표상으로는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 쓰는 말대로 '현실은 시궁창'이다.
이번 주 매일신문 '즐거운 주말'은 특집부의 두 총각 기자가 인생을 예습하는 마음으로 언젠가는 닥칠지 모르는 남자들의 육아 현실에 관해 이야기를 다뤄보기로 했다. 예습의 과정과 내용은 생각보다 혹독하고 어려웠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육아휴직 결심한 도경용·이주록 씨
대구시청에서 근무하는 도경용(39) 씨는 두 딸의 아빠다. 민주(9)와 유빈(4)의 아빠인 도 씨는 지난달 육아휴직을 내고 두 딸을 돌보고 있다. 도 씨가 육아휴직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갑작스런 어머니의 수술과 이사 때문이었다.
"최근에 어머니가 무릎 수술을 하시면서 아이들을 저희 부부 대신 봐 주기가 힘든 상황이 됐어요. 맞벌이 부부인 상황에서 아이를 봐 줄 누군가가 있어야 했어요. 게다가 최근 이사를 하면서 큰딸의 학교 적응을 위해서도 누군가는 아이를 돌봐야 했죠. 아내가 두 아이를 낳으면서 육아휴직을 쓴 상황이라 계속 육아휴직을 쓰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총대를 메었죠."
한국조폐공사에 근무하는 이주록(36) 씨는 지난해 2월 약 7개월간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귀했다. 본가와 처가 모두 아이의 육아를 부탁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게다가 둘째는 쌍둥이로 태어나 아내의 육아 부담이 너무 크게 늘어나자 이 씨는 첫째가 태어났을 때는 쓰지 않았던 육아휴직을 사용하기로 했다. 지금은 회사에 복귀해 가장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육아휴직을 사용 중인 도경용 씨와 육아휴직 후 성공적으로 업무에 복귀한 이주록 씨에게 남성 육아휴직 경험담을 들어봤다. 두 아빠에 따르면 '애 보면서 놀기도 하고 좋겠다'는 세간의 시샘과 부러움과는 달리 육아휴직을 하고 아내 대신 육아를 맡아 한다는 것은 매우 큰 용기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애 보는 일, 회사 일만큼 어렵다
도경용 씨와 이주록 씨 두 사람 모두 "육아휴직은 집에서 노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집에서 아이 보는 것은 일이 되기 때문에 직장생활만큼 여유도 찾기 힘들고 체력소모도 엄청나다. 도경용 씨는 "휴직 후 첫 주는 '일터로 나가지 않는다'는 시실이 뭔가 생소했고 여유가 생겼다는 게 기쁘긴 했다. 하지만 한 주가 지나고 나니 집안일이 정말 쉬운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며 "육아휴직 한다고 집에서 노는 게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주록 씨는 "애들이 내 말 잘 듣고 잘 놀 때는 아이 보는 것이 할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이가 아플 때나 투정부릴 때는 견디기가 힘들었다"며 "회사 일이 더 낫다는 생각도 했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육아가 회사 일만큼 어렵긴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감은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경용 씨는 "예전에는 일이 바빠서 아이들과 놀아 줄 시간이 없었는데 지금은 아이들이 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며 "지금은 아빠를 많이 따른다"고 말했다. 이주록 씨는 "아이들이 아파서 밤새 열이 떨어지지 않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 가슴이 아팠다"며 "비록 아이들이 투정부리거나 힘들게 할 때도 있었지만 옆에서 아이를 지켜보면 행복해지고, 또 둘째 출산 후 힘들어했던 아내가 나의 도움으로 편안해하는 모습을 볼 때 '육아휴직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직장만큼 가정도 중요하다' 깨닫게 돼
도경용 씨와 이주록 씨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할 때 부담감이 없지 않았다. 육아휴직을 신청하기 전부터 "굳이 남자가 육아휴직 쓸 필요가 있나" 또는 "일이 힘들어 놀려고 애 핑계를 대고 육아휴직 쓰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또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 육아휴직 수당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본봉보다는 훨씬 적어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육아휴직을 사용할 때 고민하게 된 점이다. 이 모든 부담감에도 두 사람 모두 육아휴직을 쓴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도 씨는 "아이들이 가장 부모를 필요로 하는 시기에 옆에 있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10년, 20년 뒤를 생각했을 때 내가 튼튼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믿게 되니 후회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씨도 "회사에 복귀할 때쯤에는 '다시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막상 복귀하고 나니 더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하게 되고 '다닐 수 있는 회사가 있다'는 사실이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 말했다.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대구경북의 많은 남성 직장인들에게 두 사람은 "필요성이 있을 때는 쓰는 게 좋다"고 말했다. 도 씨는 "맞벌이를 하는 아내의 가사부담이 너무 심하거나 병간호나 학교 적응 등으로 아이들에게 부모가 필요한 시기가 왔을 때는 남편이 적극적으로 나서주는 것이 좋다"며 "단지 복직 이후의 두려움이나 불안함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평생 갈 가정에 대해 20년, 30년 뒤에도 후회하지 않을 마음가짐이 있다면 육아휴직을 선택하라"고 말했다. 또 이 씨는 "직장에 복귀하고 나니 나의 사례를 보고 육아휴직을 고려해보는 동료들이 생겼다"며 "사회적 여론과 직장의 분위기가 '남성들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라고 조성되면 출산으로 고생한 아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간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도경용 씨의 일과
도경용 씨에게 자신의 하루 일과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물었다. 도 씨 말에 따르면 오전 7시 30분쯤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한다. 아내와 아이들이 아침을 먹고 나면 오전 8시에 민주를 학교에 바래다주고 오전 9시쯤 유빈이를 어린이집에 맡긴다. 아이만 맡기면 일이 끝날 것 같지만 집에 들어가면 일이 쌓여 있다. 아침 설거지, 청소, 빨래 등을 하고 나면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긴다. 이때부터 도 씨는 이런저런 놀이를 오후 3시가 되면 민주가, 30분 뒤에는 유빈이가 집에 돌아올 시간이다. 이때부터 도 씨는 이런저런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을 챙긴다. 본격적인 '육아 시간'인 것이다. 오후 8시쯤에 아내가 귀가하면 함께 저녁을 먹는데 아이들은 그 전에 저녁을 먹인다. 아이를 오후 9시 30분쯤에 재우고 나면 도 씨의 하루 일과가 마무리된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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