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通] '성요셉 아버지학교' 천주교대구대교구 김종섭 토마스 신부

"파경 위기 50대 남성, 부인과 극적으로 화해해 돌아가기도 했죠"

천주교대구대교구에서는 현대 가정의 위기를
천주교대구대교구에서는 현대 가정의 위기를 '아버지 바로 세우기'를 통해 모색해보자는 취지에서 '성요셉 아버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대구대교구 사목국에서 가정 담당으로 일하고 있는 김종섭 토마스 신부.

인류 역사 수십만 년 동안 남자의 존재 이유는 생존과 번식이었다. 사냥과 전쟁은 그들의 일상이었으며 칼과 활이 늘 곁에 있었다. 원시사회에서 자녀 양육은 당연히 모계(母系)의 영역이었다. 산업화시대 가족의 생계를 전담했던 때도 남성은 양육에서만큼은 열외가 인정됐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그 남자들이 새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 생계, 생존의 생물학적 낡은 틀에서 벗어나 자녀 양육, 가족 공동체 부양에 동참하라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점점 파국을 향해 치닫는 가정의 위기도 이런 아버지의 반성을 종용하는 분위기에 일조했다.

이런 가정의 중병 어떻게 치유할까. 종교계는 오래 전부터 고민을 거듭해왔다. 기독교에서는 '두란노 아버지학교'를 만들었고 불교에서도 가족 단위 '단기 출가'를 기획해 가정 바로 세우기에 나섰다.

천주교대구대교구에선 8년 전부터 가정의 위기를 '아버지 바로 세우기'를 통해 접근해 보자는 가정 사목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2013년부터 '성요셉 아버지학교'를 운영해 온 김종섭(40) 토마스 신부를 만나봤다.

◆'성요셉 아버지학교'의 탄생=2007년 천주교대구대교구에 신부 5명이 모였다. 이들은 현대사회 가정 위기에 대한 대책과 교계 차원의 영적 운동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 시대 가정을 위한 효과적인 사업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설렘과 흥분 속에서 문을 연 '성요셉 아버지학교'는 대구지역 대표적인 가정 사목으로 자리 잡으며 현재까지 30기에 걸쳐 1천90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2013년부터 '아버지학교'를 운영해온 김 신부는 "처음엔 발령장 하나로 '명령'에 의해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일을 진행하면서 가정의 영적 회복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부인의 설득이나 주위의 강권에 의해 억지로 끌려왔던(?) 사람들이 회를 거듭할수록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회상했다.

5주간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땅갈기, 씨뿌리기, 물주기, 돌보기, 열매 맺기 등 5개의 주제로 이루어진다.

1주 차엔 나의 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부자(父子) 관계를 성찰하고 2주 차엔 동반자(아내)와의 책임과 의무를 이해하고 3주 차엔 부부의 열매인 자녀들과 사랑을 살피며 4주 차엔 아버지로서 사명과 영적 가치는 무엇인지 고민하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마지막 5주 차엔 1박 2일 일정으로 가족캠프(피정)로 이어진다.

◆캠프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나다='성요셉 아버지학교'엔 보통 '준비된 자'들이 온다. 이들은 캠프 과정에서 자녀 사랑을 확인하고 다지며 동반자와의 신앙적 유대를 키워나간다. 그런데 가끔씩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서 변화의 기적이 나타나기도 한다.

"얼마 전에 파경 위기의 한 50대 남성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어요. 등록 이유는 단 하나. 이혼 전 마지막으로 캠프에 참가해 보라는 부인의 권유였습니다."

비신자였던 그 사람은 예상대로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과제는 뒷전이었고 기도 때도 딴전만 피워 봉사자들을 무척 힘들게 했다. 4주 동안 겉돌던 그에게 변화가 감지된 것은 마지막 5주째 캠프(피정) 때였다. 가족과 함께 참석한 캠프에서 그는 아내와 극적으로 화해했다. 다른 가정들이 캠프에서 사랑을 나누는 모습에 그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었던 것이다. 물론 이 부부는 파경 위기를 넘기고 새 삶을 살고 있다.

한 80대 할아버지의 사연도 재미있다. 이 노인은 50대 아들과 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아들은 어릴 적 상처로 마음속으로 아버지의 존재를 완전히 지운 상태였고 아버지도 도를 넘어선 아들의 적의(敵意)에 마음 문을 열지 않았다. 도저히 해결책이 없을 것 같던 부자의 갈등에 아버지학교 묘안을 낸 사람은 며느리였다. 이 노인은 이 캠프를 통해 아들의 마음속 그늘을 이해하게 되었고 마침내 아버지라는 권위를 내려놓고 먼저 아들에게 다가서기로 했다. 이후 소식은 잘 모르지만 틀림없이 좋은 결실을 맺었을 것으로 확신한다.

◆가정 사목에서 펼치는 다른 사업들=집안의 제사장, 가정의 CEO로 가장의 권위를 세우는 일 외에도 대구대교구에서는 행복한 가정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첫째가 약혼자들을 위한 가나강좌다. 신자들은 적법한 혼인을 위해 결혼 전 교리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부부의 사회학적 역할, 올바른 성(性)에 대해 배우게 된다.

둘째 부부일치(Marriage Encounter'ME)운동. 본래 어원은 '혼인 생활의 새로운 발견, 부부들 대화 모임'의 의미. 결혼 5년 차 이상 부부가 대상이며 2박 3일간 이루어진다. 이미 행복한 부부를 더 즐겁게 하고 가정의 일치를 도와 '빛이 되는 가정'으로 인도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머니의 올바른 육아, 자녀 사랑법을 나누고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성마리아 어머니학교'도 역점을 두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김 신부는 "어머니학교는 단순히 아이를 잘 키우고 배우자와 관계를 잘 맺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며 "배우자를 통해, 자녀를 통해 자신이 더욱 행복해지는 것이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김 신부가 운영하고 있는 심리상담소 '소람'(소중한 사람)도 건강한 가정을 지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70여 전문 상담사의 재능기부 형태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단일 상담소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생활, 가사, 법률, 치료 등 전 분야에 대한 상담이 이루어진다.

김 신부는 "많은 아버지들이 프로그램 취지엔 공감하면서도 '우리 부부는 괜찮아' '주말에 너무 바빠서' 등 이런저런 핑계로 수강을 포기하는 분들이 많다"며 "세상일에 파묻혀 자신과 가정을 돌보지 못하는 모습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유전적으로 양육은 남성의 관심 영역이 아니라고 한다. 이렇게 아버지들이 가정과 육아에서 발을 빼는 동안 현대사회는 가족의 해체에 직면하게 되었다. 가정의 위기와 그 해법의 모색 과정에서 사회는 아버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사회는 이제 이 땅의 아버지들에게 부성(父性)의 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요구는 종교계에 큰 울림으로 작용했고 마침내 성찰 깊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종교계의 이런 조그만 움직임이 사회 캠페인으로, 범시민 운동으로 확대돼 '부성'(父性)이 '부성'(富盛)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한상갑 기자 arira6@msnet.co.kr

◇TV도 아빠 전성시대…"흥미위주 진행으로 아버지상 본질 왜곡될까 걱정"

'아빠를 부탁해' '슈퍼맨이 돌아왔다'…. 아빠들이 줄줄이 TV 앞으로 불려나오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는 물론 현실에서도 아빠의 호출은 계속 이어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아빠들의 갑작스러운 호출 현상을 두 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첫째는 산업화시대 이후 가족들을 부양하느라 혹사당했던 가장들을 위로하는 차원으로 보는 견해다. IMF 사태, 대량 퇴직시대와 맞물려 위축된 아버지들을 격려하는 사회적 위무(慰撫)라는 것이다.

둘째는 그동안 모성애 과잉에 대한 반성으로 부성(父性)을 문화 코드로 띄우려는 의도로 보는 견해다. 생계를 책임진다는 핑계로 양육에 소극적이었던 아버지들을 불러내 가족, 자녀들과 어울리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김 신부는 이런 문화현상에 대해 "요리, 운동, 야영, 게임 같은 생뚱한 이벤트를 맡겨 당황하는 아빠들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것 같다"고 분석하고 "한편으로 흥미 위주로 프로그램이 진행돼 혹시나 '아버지상(像)'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분석했다.

오늘도 TV 속 아빠들은 자녀를 위해 라면을 끓이고 강변으로 자전거 하이킹을 가는가 하면 화투판으로 호출되기도 한다.

때때로 가족 간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돌발 미션에 아빠들이 당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가족 간에 드리워졌던 칸막이가 걷히고 자녀와의 사이에 가로놓여 있던 장막도 얇아질 것이다.

한상갑 기자

◆김 신부가 걸어온 길='세상을 올바로 사랑하고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 안에서 참 나를 발견하고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

1995년 대구덕원고를 졸업한 김 신부는 '하느님과의 소명'에 이끌려 대구가톨릭신학대학에 입학했다. 2004년 대학원 졸업 후 그해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동안 동천성당, 고성성당, 공군 군종신부(광주, 서울), 2대리구 가정 담당을 거쳤으며 2013년부터 대구대교구 사목국 가정 담당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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