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대견사는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호국사찰이지요. 일제강점기인 1917년 6월 23일 자 조선총독관방 총무국에서 발간한 조선총독부관보 제1466호에 '동화사(본사) 말사인 대견사의 폐지를 6월 20일 자로 허가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조선총독부가 대견사를 강제로 폐사시킨 사실이 확인된 것입니다."
비슬산 대견사 초대 주지 각운 스님은 일본이 대견사 강제 폐사에 대해 "경내의 7개 건축물의 가람배치(七堂伽藍'칠당가람)가 본국인 대마도를 바라보는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며 "산정에 높이 앉은 대견사가 째려봐 자신들의 기가 꺾인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팔공총림 동화사와 달성군은 1천200년 전 신라시대(헌덕왕)에 창건된 달성군 유가면 용리 비슬산 대견사의 중창사업을 3년 6개월여 만에 마치고, 지난해 3월 1일 첫 산문을 열었다. 동화사는 50억원을 들여 전체 사찰부지 3천633㎡에 대웅전(73㎡)을 비롯해 대견보궁'선당'산신각'종무소'요사채 등을 폐사 당시의 원형대로 복원됐다.
현재 대견사에는 새로 중창된 여러 가람과 신라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30m, 높이 6m의 축대가 남아 있고 무너진 9층 석탑(현재는 3층)과 거대한 선각 불상, 1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동굴대좌(洞窟臺座) 등이 있다.
각운 스님은 "대견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조선 광해군과 인조 대에 중창됐다"며 "1900년 영친왕 즉위와 대한제국 축원을 위해 중수된 뒤 동화사 말사로 편제됐다가 1917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된 후 100여 년 가까이 지난 후 다시 중창된 것"이라고 했다.
특히 대견사는 고려 보각국사 일연 스님이 22세이던 1227년(고려 고종 4년) 승과 선불장에 장원 급제해 초임 주지로 22년간 머물며 참선에 몰두해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사찰로도 유명하다.
이에 대해 각운 스님은 "일연의 삼국유사는 우리나라 고대의 정치'사회'문화생활을 기록한 대서사시"라며 "일연이 비슬산의 보당암을 비롯해 용천사, 인흥사, 유가사, 용연사, 남지장사 등 비슬산 자락의 사찰'암자 등을 옮겨다니며 머문 흔적들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고 했다. 각운 스님은 또 "우리 민족 신앙 고유의 주요 신은 산신인데 하늘의 천신이 성스러운 산에 내려와 산신이 되어 주석하는 곳이 천왕봉"이라며 "비슬산 정상이 바로 천왕봉(天王峯'1,084m)이고, 산신이 정성천왕(靜聖天王)"이라고 했다.
조선 중종 때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정조 때의 여지도서 등에도 대견사와 비슬산에 산재한 여러 사찰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각운 스님은 "비슬산 천왕봉의 산신인 정성천왕은 전국 산신 중 최고의 산신"이라며 "옛 여러 문헌에 정성천왕은 매우 영험이 있어 빌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는데 신라 이래 비슬산에는 전국에서 기도하기 위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고 기록돼 있다"고 했다.
각운 스님은 비슬산 대견사를 두고 '비보사찰'(裨補寺刹)이라고 했다. 비보사찰은 지기(地氣)는 왕성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하는데, 쇠퇴하는 곳에 자리 잡은 인간이나 국가는 쇠망하게 마련이다. 고려 국사 도선은 이를 막기 위해 중요 혈자리에 인위적으로 사찰이나 사탑을 건립, 지기를 다스렸다는 것이다.
각운 스님은 "고려 태조는 '훈요십조'(訓要十條)에서 도선의 비보사탑설에 의해 지정된 곳 이외는 어디에도 사탑을 건립하지 말도록 했다"며 "이제 중창 1주년을 맞은 비보사찰 대견사에는 현재 전국에서 찾아오는 불자들로 넘쳐나고 있다"고 했다.
달성 김성우 기자 sw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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