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배한성의 새론새평] 오래된 것의 가치 미학, 고미술품

서울생. 서라벌예술대 방송과 1년 수료. 한국관광 명예홍보대사. 한국성우협회 이사장. 생명나눔 친선대사
서울생. 서라벌예술대 방송과 1년 수료. 한국관광 명예홍보대사. 한국성우협회 이사장. 생명나눔 친선대사

도자기·목가구·석물·민예민속품 등

옛 어른들의 심미안·솜씨는 세계적

고미술 미학·가치 찾아가는 취미여행

우리 것에 대해 탐방하기 좋은 계절

내가 녹음했던 외화 맥가이버에선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 하며 저세상에 사시는 할아버지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정의감과 유머를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아울러 할아버지가 쓰시던 낡은 트럭을 애지중지하고 만년필, 손전등, 자그마한 배지까지 소중히 여기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조상들께서 쓰던 것들을 구닥다리나 잡동사니 고물이 아니고 정성과 추억 그리고 체취가 배어 있는 유산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50, 60년대 초가(草家) 시절에서 개량주택 그리고 아파트 시대로 변화되면서 조상님들이 쓰던 것들은 가난한 시절의 것으로 취급했다. 반면 포마이카 가구와 캐비닛 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식탁이나 가정용품을 신식이라고 좋아했다. 아파트엔 서양 스타일이 어울린다며 옛것은 우중충하고 칙칙한 데다 궁상스럽다는 이유로 엿장수 아저씨들에게 헐값에 넘겨버리기도 했던 것이다. 부자댁에서는 이태리 가구에 침대, 소파와 카펫을 깔아 부를 과시하기도 했다.

집구석에 처박히듯 잊혀 있던 근'현대와 옛것들이 빛을 보게 된 계기는 KBS1 TV 프로그램 진품명품이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20년 세월에 얼마 전 1천 회를 맞았다. 그동안 별의별 희한한 사연들이 많이 소개되었는데, 그중 다산 선생의 하피첩(霞帔帖)은 천주학쟁이 집안이라는 핍박의 유배 생활이 주는 고초와 또 다르게 애잔하고 눈물겨움이 있다. 곱디곱던 새댁 시절부터 입었기에 낡고 바랜 명주치마를 다산 선생께 보낸 아내의 속내를 짐작해서였을까. 사랑하는 아내 보듯 하던 그 치마의 쓸 만한 곳을 오려내 글을 담았다. 오래오래 잘 간직하라는 당부의 마음과 아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달래고도 싶어서였을 것이다.

병든 아내 낡은 치마 보내서

천리 먼 길 애틋함을 부쳤네

오랜 세월 붉은빛이 바래니

만년의 서글픔 가눌 수 없네

마름질로 작은 서첩을 이루어

지식을 일깨우는 글을 적는다

부디 부모 마음 잘 헤아려

종신토록 가슴 깊이 새기려무나

사연도 처연하지만 오랜 세월 실종되었던 하피첩을 찾게 된 과정도 처량하다. 2006년 4월 진품명품에 출연한 소장자는 그 첩이 그리도 엄청난 유물인 줄 모르고 왔다는 것이다. 2년 전쯤 파지 모아 파는 할머니의 수레 한 귀퉁이에 있던 그 첩과 의뢰인의 공장에 있던 파지와 그냥 맞바꾸었다는 것 아닌가. 하마터면 보물 하피첩이 고물로 세상에서 사라질 뻔했던 것이다.

우리 고미술품(골동품은 일본의 표현이라고 한다. 쓰면 안 되는 것은 아닌데 고미술품이란 말도 뭔가 아쉽다)을 흠모하는 나로서는 조상님 유물 찾은 것처럼 설레고 반가웠다. 그럴 만도 한 것이 2006년 책을 출간하면서 야금야금 모은 고미술품 전시를 했었다. 배한성의 옛 사랑전은 방송인으로는 최초의 전시였다. 최초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옛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흔치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 도자기, 목가구, 석물, 민예민속품 등등 옛 어른들의 심미안과 솜씨는 세계적인 것이다. 어찌 그리 단아하고 기품 있는 조형미와 색채, 기능을 아셨을까? 여백의 여유와 해학 그리고 두려움 없는 벽사(辟邪)의 의미까지 말이다. 창경궁 같은 궁궐은 물론 종묘와 석굴암, 부석사 무량수전 그리고 안동의 병산서원 같은 축조물들의 빼어남은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자랑스러운 세계의 유산이요, 유물이다.

옛것은 오랜 세월의 풍파를 순하게 견디어낸 오묘한 신비감이 깃들어 있다. 범접 못 할 신비감이 아니라 친근함으로 말이다. 세월만큼 낡아지기도 했지만 절대 초라하지 않다. 반듯하게 낡아진 옛것은 위엄 있고 품격 있게 나이 든 선비와 같다잖은가. 내가 고미술을 사랑한 것이 꽤나 사치를 부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는 않다. 우리 것의 미학과 가치를 찾아가는 좋은 취미여행 같은 것이었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걸으면서 하는 독서라는 말처럼 우리 것에 대해 책도 보고 탐방하기 좋은 계절이다. 여름방학과 휴가도 머지않았으니까 말이다.

배한성/성우·서울예술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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