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강은 사람을 불러모았다. 사람들은 강을 이용하다 점차 강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독일 이자르 강도 예외는 아니었다. 알프스에서 다뉴브 강까지 270㎞를 흐르는 이자르 강은 뮌헨의 젖줄이었다. 뮌헨 사람들은 12세기부터 도시를 가로지르는 이자르 강 물줄기를 운하로 활용했다. 곳곳에 물길을 내 생필품을 나르고 농사도 짓고 물레방아도 돌렸다.
산업혁명이 시작되자 강을 더 적극적으로 지배했다. 도로와 철길이 생겨나면서 작은 운하는 복개되거나 용도 폐기됐다. 이자르 강은 폭을 줄여 부족한 택지로 활용했다. 1820년부터 시작된 이른바 직강화 공사로 굽이치던 이자르 강은 직선화되고, 폭은 50여m로 좁아졌다. 홍수는 더 잦아졌고 빨라진 물살은 강바닥을 파헤쳤다.
후유증이 커지자 뮌헨시는 1910년부터 대대적인 토목공사로 대항했다. 하상 침식을 막기 위해 도심 8㎞ 구간에 200m마다 50~60㎝ 높이의 콘크리트 낙차공을 설치했다. 공장을 돌릴 전기 생산을 위해 강에 보를 설치하고 발전용 인공수로로 물길을 돌렸다. 강은 더 메마르고 홍수기에는 범람이 계속됐다. 100년간의 토목공사로 이자르 강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1988년, 뮌헨시의회는 마침내 '이자르 강 재자연화'를 선언했다. 시민'환경'정치단체 등 12개 단체도 함께 팔을 걷었다. 10여 년의 준비 끝에 2000년, 도심 통과 8㎞ 구간에 복원의 첫 삽을 떴다. 새 물길은 뮌헨공대에서 구간마다 1대 20 축소모형 실험으로 설계했다. 강폭을 넓혀 물이 가는 대로 길을 트자 여울이 생기고 모래, 자갈이 돌아왔다. 1㎞ 복원에 1년 이상 걸려 2011년에야 비로소 공사가 마무리됐다.
완공 1년 전, 필자가 방문한 이자르 강은 별천지였다. 도심을 흐르는 강은 물, 자갈, 숲이 어우러진 자연 그 자체였다. 한 무리의 고니 떼에 손을 내밀자 우르르 몰려오더니 손가락을 깨물었다. 빈손을 내민 게 부끄럽고 미안했다. 막바지 공사 구간에서는 크레인이 경차 만한 바윗덩이를 물속에 넣고 있었다. 물고기 집(Fish House)을 짓고 있었다. 이자르 강은 주말이면 5만 명이 찾는 명소로 변했다.
대구 신천은 여러모로 이자르 강과 닮았다. 두 곳 모두 대도시를 관통하며 개발 후유증으로 복원의 길을 걷고 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신천에는 맑은 가창 계곡물이 흘렀다. 이곳에서 채소도 씻고 빨래도 했다. 물고기도 잡고 멱도 감았다. 여름에는 피서지로, 겨울에는 썰매장으로 북적댔다.
신천의 운명은 1960년대 초 상류에 가창댐이 건설되면서 완전히 뒤바뀌었다. 물길이 끊기고 강변 문화도 사라졌다. 급격한 도시화에 폐수가 흐르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신천은 다시 상생의 강으로 복원 중이지만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를 안고 있다. 수중 고무보를 여닫으며 치수(治水)는 일정 성과가 있었지만 이수(利水)는 아직 요원하다. 현재 수질로는 발도 담글 수 없으니 폭염을 피해 수태골로 가는 피서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대구시는 신천을 진정한 생태하천으로 복원시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오는 8월 말까지 개발 방향을 확정하고 2022년까지 1천억원을 들여 이번에는 제대로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복원의 핵심은 '물'이다. '맑은 물이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흐르는 맑은 물'에 올인할 것을 제안한다.
시가 검토 중인 낙동강 물을 끌어 오는 것도 한 방안이다. 가창댐 물을 활용하는 역발상도 필요하다. 수돗물 공급량 6%대 수준인 상수원 전용 기능을 접고 신천 유지수로 기능 전환을 하는 게 실익이 더 클 수도 있다.
이자르 강 개발 100년의 교훈은 최소한의 간섭으로,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재자연화'다. 신천에 다시 맑은 물이 흐르도록 한다면 복원은 자연이 스스로 해준다.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