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후의 명작' 뒤에는 '불멸의 사랑' 있었다…『명작에게 사랑을 묻다』

르누아르가 1887년 그린
르누아르가 1887년 그린 '목욕하는 여인들'

명작에게 사랑을 묻다/이동연 지음/ 평단 펴냄

고갱, 톨스토이, 발자크, 르누아르, 비발디, 고흐, 셰익스피어, 롬멜, 보들레르, 세잔, 베르디, 채플린…. 심금을 울리는 명작을 남기거나 지우기 힘든 역사적 자취를 남긴 사람들이다. 외면적으로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삶을 살았지만, 내밀한 삶의 영역에서는 평범한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았다.

불세출의 영웅과 천재들은 살아가는 동안 사람의 마음에 오래도록 기억될 위대한 업적을 쌓았지만, 한편으로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웃고 울고, 사랑하고 이별했다. 때로는 누군가를 미워했고 집착도 했다.

명작이나 거대한 역사적 자취는 그냥 생겨나지 않는다. 한 장면의 역사, 한 편의 명작이 태어나기까지는 한 사람의 희로애락이 깃든 라이프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불후의 명작을 만든 사람들의 창작혼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역사와 작품 이면에 숨은 이야기들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펴본다. 그래서 알려진 역사 혹은 보여지는 작품을 더욱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책은 화가, 음악가, 시인, 배우, 장군 등 명사 25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불세출의 사진작가였던 로버트 카파는 폭탄이 터지는 순간에도 셔터를 누를 만큼 사진작품을 사랑했다. '한 발자국 더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가라'라는 사진 철학은 그를 자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는 절박함이 배어 있고, 화약 냄새가 난다. '카파이즘'이라는 작가정신은 그렇게 탄생했다.

근접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사진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이 사랑한 여인이 있었다. 게르다 타로, 최초의 여성 종군기자였다. 카파는 타로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나 타로가 전장에서 사진을 찍다가 목숨을 잃자, 카파는 모든 것을 잃었다. 당시 최고의 여배우였던 잉그리드 버그만이 카파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했지만 카파는 거절했다. 버그만의 구애를 거절하고 다시 전장으로 나간 그는 전장에서 사진을 찍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가 하면 여자를 출세의 수단으로만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대문호 발자크다. 그는 가난에 시달리자 성공과 돈에 집착했고, 돈과 명예를 지닌 귀부인들만 골라 사귀었다. 많은 귀부인과 사귀었고, 그중 도드라지게 큰 부자였던 에벨리나 한스카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에벨리나에게는 남편 한스카 백작이 있었고, 에빌리나와 발자크의 신분 차이도 컸다. 발자크는 18년 동안 이 귀부인에게 공을 들였고, 두 사람은 끝내 결혼하게 되지만 6개월 만에 발자크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종말을 고하게 된다.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는 독일 장군 에르빈 롬멜. 그는 중대병력으로 적군 9천여 명을 사로잡았으며, 연전연승을 달린 독일의 명장이었다. 독일군 사병과 롬멜 간에는 계급이 아닌 인간적인 유대가 끈끈했다. 그 덕분에 그들은 어디서나, 누구와 싸워도 이겼다. 롬멜 때문에 가장 곤경에 처했던 영국의 처칠 수상도 롬멜에게 존경을 표했다. 롬멜은 전투 중에 적군의 야전병원에 물이 바닥났다는 소식에 공세를 취하기는커녕 장갑차에 백기를 달고 많은 양의 식수를 전해 준 위대한 장군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아픈 사랑이 있었다. 첫 번째 연인 루치아와는 종교 차이 때문에 양쪽 가문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했고, 두 번째 연인 슈템머와는 신분 차이 때문에 결혼하지 못했다. 롬멜은 평민 출신의 초급장교였고, 슈템머는 부자에다 귀족이었다.

슈템머와 헤어지기를 거부한 롬멜은 아이까지 낳게 된다. 그러나 두 집안은 여전히 반대했다. 전역해서 가족과 함께 살고자 했으나 1914년 8월 3일 독일이 프랑스에 선전포고하면서 전역은 연기됐고 롬멜은 전장을 떠돌게 된다. 그 사이에 슈템머는 홀로 채소장사를 하면서 딸을 키웠다. 롬멜은 전장을 떠돌던 중 첫사랑 루치아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는 아직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였다. 첫사랑을 다시 만난 롬멜은 슈템머가 전쟁 통에 홀로 아이를 키우고 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루치아와 결혼하게 된다.

세월이 지나 슈템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롬멜은 심하게 자책하고, 더욱 전투에 몰입한다. 홀로 남은 딸을 찾아낸 롬멜은 죽을 때까지 딸과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딸이 짜준 스카프를 어떤 전투에 나가든 매고 다녔다. 그 스카프는 롬멜의 상징이 되었다. 당시 독일 군인은 혼외자식을 둘 수 없었으므로 결혼하지 않고 낳은 딸을 '조카'라고 불렀고, 딸 게르투루트는 '영원한 조카'가 되었다. 책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명사들의 조금도 위대하지 않은 삶을 자세히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으로 평범한 모든 삶이 위대하다고 말한다. 446쪽, 1만5천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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