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임수정에게 '동안'이라는 수식어가 꼭 따라붙는다. 서른여섯. 나이를 밝히는 걸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은 개의치 않아 한다. 동안이라는 수식어도 이제는 지겨울 법한데 그렇지 않단다.
"계속 따라다니는 동안이라는 수식어를 빨리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억지로 유지하려고 한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다른 역할을 맡을 때 '어려 보인다'는 이미지는 걸림돌이 될 법도 한데, 임수정은 "안 좋은 것보다 오히려 유리한 점이 많았다"고 긍정적이다. "이런 이미지 덕에 어리지만 성숙한 캐릭터, 복잡한 감정 상태에 놓인 캐릭터, 중성적인 캐릭터도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이런 외모 때문에 저를 더 많이 알리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시간이 지나면 동안이라는 말 말고 다른 얘기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인지 지난 4일 개봉한 영화 '은밀한 유혹'(감독 윤재구)은 더 만족스럽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여자 지연(임수정)과 인생을 완벽하게 바꿀 제안을 한 남자 성열(유연석)의 위험한 거래를 다룬 범죄 멜로에서 지연은 초반에는 고전적인 여성 캐릭터다. 이제껏 임수정을 통해 많이 봐 왔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인내를 가지고 끈기 있게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는 모습이 색다르다. 특히 중'후반부 때문에 "임수정에게서 풍긴 소녀성이 조금은 더 자라서 성숙해지지 않았나 한다"라는 게 임수정의 생각이다.
"솔직히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도전하고 싶다고 바랐지만 연기하기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현장에서 저도 극 중 지연처럼 힘들고 고독했죠. 한 신 한 신 겨우겨우 찍고 치열했던 현장이었거든요. 그래도 한번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 부쩍 자란다고 하잖아요? 촬영하고 나니깐 뭔가 많이 성숙해진 느낌이에요."(웃음)
그는 '은밀한 유혹'이 제목만큼 야하지 않다는 말에는 발끈(?)했다. "왜요? 상상의 여지를 주는 장면이 있잖아요. 왜 하필 성열이 자고 일어났는데 상의를 벗고 있는지, 또 도발적인 상황 속 키스신도 밀도 높지 않았나요? 전 그 장면들이 아주 잘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임수정은 키스신 상대 유연석이 좋았다. 연기 호흡뿐 아니라 유연석이 연기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가 임수정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연석 씨는 '은밀한 유혹'을 찍을 때 공교롭게도 '제보자'와 '상의원'을 맞물려 찍고 있었어요. 힘들어했지만 집중해서 잘해줬죠. 배우로서 작품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를 보고 자극을 받았어요. 나도 현장에서 부지런히 찍으면서 내 모습을 계속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면서 그는 "난 상대 배우 복이 많은 것 같다"고 행복해했다.
소지섭과 함께했던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도 여전히 이야기된다. 2004년 드라마이니 벌써 10년이 지났다. 임수정은 "오랫동안 회자하는 드라마를 했다는 게 좋다"며 "그래도 대중이 내 모습을 궁금해하고, 보고 싶다고 하니 더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웃었다.
다음 작품을 선택하기 어렵다는 부담감은 어느 배우에게나 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엄청나게 사랑받은 임수정이기에 부담감 때문에 드라마를 하지 않는 건 아닐까. 임수정은 "그런 부담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배우 본연의 모습에 충실해진 것 같아요. 20대 때 항상 경쟁 상태에 놓여 있었고, 치열했어요. 좋은 필모그래피를 쌓고 좋은 배우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목표가 뚜렷해서 연기하는 자체의 즐거움을 많이 놓친 것 같아요. 작년에 두 작품('은밀한 유혹', '시간이탈자')을 연달아 하면서 현장 에너지를 받으며 즐거움을 알아간 것 같아요."(웃음)
물론 압박과 스트레스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다. 다만 "예전보다는 자유로워지고 뭔가를 벗어난 것 같다는 느낌"이다. 선후배, 동료 배우들과의 경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제가 특이할 수도 있지만 저는 10대 때도, 20대 때도 빨리 30대가 되고 싶다는 일종의 로망이 있었어요. 지금의 감성이 배우로서 저한테 기회가 많이 열려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2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한 역할이 들어와요. 참, 이번에는 그런 말도 좋았어요. 제가 제일 먼저 캐스팅됐는데 촬영팀, 조명팀 등 스태프들이 '임수정이 참여한대요? 그럼 저희도 할래요'라고 해서 만들어진 프로젝트래요."
나이가 들면 관심사도 바뀌는 법이다. 임수정은 "지금은 작품 활동에 대한 관심이 가장 많다"고 했다. 또 기타 연주와 꽃꽂이, 책 읽고 영화'미드(미국 드라마) 보기, 공연'전시회 다니기 같은 일상의 취미를 즐긴다. 이성에 대한 관심만 빠졌다.
그는 "항상 연애할 마음은 되어 있지만, 개인 성향이 혼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짚었다. 이성 친구에 이어 결혼까지 골인하려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각자 삶을 즐기다가, 또 좋아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치며 웃었다.
임수정은 이제 다른 수식어를 기대할 법도 하다. 고개를 젓는다. "수식어요? 그냥 배우 임수정으로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또 다른 별명을 붙여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고, 없어지면 '예 알겠습니다'라고 수긍해야죠. 그런 것 때문에 흔들리지는 않았으니까요."
마지막 질문, 현실 속 임수정이라면 '은밀한 유혹'에서처럼 달콤한 유혹에 빠질까?
"고민은 되겠지만 그런 제안은 수락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내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없고, 누군가의 선택을 받기 위한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건 답답하고 힘들지 않을까요? 그 불안함을 견디기 쉽지 않을 것 같거든요."
진현철/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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