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 산책] 청렴함 대명사 백로의 인식 전환

백로사(白鷺鷥)

백로 노동

옥으로 다듬은 듯 흰 백로 한 마리가

작은 고기 잡으려고 마음이 다급하네

모래밭에 발돋움해 기회를 노리거늘

사람들은 모르고서 한가하게 섰다 하네

刻成片玉白鷺鷥(각성편옥백로사)

欲捉纖鱗心自急(욕착섬린심자급)

翹足沙頭不得時(교족사두부득시)

傍人不知謂閑立(방인부지위한립)

[백로사(白鷺鷥)]

백로 한 마리가 시냇물에다 두 발을 담그고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먼 산 위에 두둥실 떠있는 흰 구름을, 흰 구름 너머 그 너머, 보이지도 않는 그 너머 세계를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 참 한가하고도 평화롭다. 깊은 명상에 잠긴 고고한 철학자 같기도 하다. 그러므로 백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평화와 순결, 청렴과 한가함의 대명사였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창파(蒼波)에 좋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포은 정몽주의 어머니가 지었다는 이 시조도 백로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의 소산이다.

하지만 백로가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페인트 모션에 불과하다. 실상 그때도 백로의 눈길은 물 아래 피라미를 향하고 있으니까. 높이 들고 있던 그 하얀 대가리를 물속에다 첨벙 곤두박을 때, 그때가 피라미가 지나가는 때다. 백로도 일단 먹어야 사니까, 먹겠다는 백로를 나무랄 수는 물론 없다. 하지만 백로는 먹어도 정말 너무 많이 먹는다. 식욕이 엄청 왕성하여 물고기가 목구멍에 가득 찰 때까지 정말 줄기차게 잡아먹으니까. 급기야 과식으로 속이 답답하면 먹은 음식을 왈칵 토하고, '우와 이제 좀 살 만하네' 하며 다시 피라미로 시선을 옮기니까.

당나라의 시인 노동(盧仝'?~835)이 지은 이 작품 속의 백로도 그렇다. 백로는 지금 물고기를 잡는 데 온통 마음이 쏠려 있다. 잡아먹을 기회를 얻지 못해서 안달이 난 상태다. 그러나 그 백로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백로가 한가하게 서 있다'고 여긴다. 시인은 백로에 대한 기존 인식의 전복을 통하여 바로 그 착시 현상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겉 희고 속 검을손 너뿐인가 하노라." 이직(李稷)이 지었다는 이 시조도 바로 백로에 대한 이와 같은 전복적 인식의 소산이다.

요즘 우리나라 대학에도 백로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강의실에서는 세계와 인간에 대해 그야말로 열변을 토하다가, 연구실로 돌아오면 연봉 등급 올릴 대책 세우기에 골몰하고 있는 백로들이다. 그 무수한 백로들을 향해 '어이, 종문아~, 이종문!' 하고 목청이 터지도록 크게 외치면, 경북 영천 출신의 백로 한 마리가 얼굴을 붉히면서 손을 든다. 오호(嗚呼)!

이종문 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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