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순재의 힐링토크] 의과대학 중퇴할 만큼 사진에 빠졌다…사진작가 박진우 씨

"욕심 비우고 집착 없애고 남에게 주는…제대로 노는 것이 목표"

작업실 내부. 그는 여기서 책상, 오븐기, 커피 로스팅기계를 직접 만들었다.
작업실 내부. 그는 여기서 책상, 오븐기, 커피 로스팅기계를 직접 만들었다.

그는 경북대 의대 본과 2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사진이 하고 싶어서였다. 학교를 그만두지 않으면 계속 의사의 길을 기웃거릴 것 같아 아예 퇴로를 차단해 버렸다. 꽃과 자연을 렌즈에 담으며 자연과 놀기에 재미를 붙일 즈음, 그는 대구와 가까운 청도에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살고 싶은 곳의 첫째 조건은 가격이 오르지 않을 땅이어야 했다. 부동산 업자의 말을 빌리면 평생 팔리지 않을 땅에 집을 짓고, 그는 매일 자유롭게 살고 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자신이 직접 만든 오븐으로 빵을 굽고 직접 만든 탁자에서 불경과 성경을 필사한다.

'청도의 소로'(월든의 저자, 자연에서 단순생활을 함)로 불리는 사진작가 박진우(57'청도군 이서면 칠곡1리) 씨. 그를 찾아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길은 좁았고 그의 집은 막다른 곳에 있었다.

-집 찾기가 어렵다.

▶10년 전 대구와 가까운 청도에 살고 싶어 땅을 보러 다녔다. 땅값이 오르지 않고 앞으로 개발이 안 되는 곳을 원했다. 마침 나와 있는 매물 중 도저히 팔리지 않을 것 같은 땅이 있다고 해서 봤더니 산자락이었고 남향이었으며 근처 저수지의 풍광도 너무 화려하지 않아 딱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얻은 집이라 찾아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굳이 땅값이 오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나.

▶어릴 때부터 꿈꿔온 전원은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고 한적한 곳이었다. 개발이 돼서 여기저기 집을 짓고 사람들의 왕래가 잦으면 도시에 살지 왜 전원에 오겠는가. 잘 놀기 위해 그런 땅이 필요했다.

-잘 노는 것이 무엇인가.

▶생산적으로 노는 것이다. 삶을 소풍처럼 여긴 천상병 시인처럼 사는 것을 말한다. 보통 논다고 하면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논다는 것'은 약간의 도가적인 놀음이다. 놀면서 새로움을 얻는 것이다.

-어렵다. 쉽게 이야기해달라.

▶꽃이 피면 꽃을 바라보면서 놀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느끼면서 논다. 꽃을 찍을 때면 꽃이 손짓한다. 그러면 꽃과 놀게 된다. 무아지경에 이르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것을 나는 '논다'고 말한다.

-그런 기준이라면 대부분 사람들은 놀지 못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노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노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 놀 줄도 모른다. 언어적인 선입관 때문인지 논다고 하면 부정적인 생각부터 한다. 논다는 것에 대해 새로운 개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노는 것은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노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떻게 훈련을 해야 하나.

▶욕심이 비워지고 집착이 없어야 제대로 놀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에게 주는 훈련부터 우선 필요하다. 처음에는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단계가 지나면 아끼는 것을 준다. 어느 순간이 되면 다 줄 수 있게 된다. 지금 내가 쓰고 있지만 나보다 더 소중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아무렇지 않게 줄 수 있다. 내 마음의 단계가 달라지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훈련하면 쉽게 줄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잘 놀 수 있다.

-요즈음은 무얼 하고 노는가.

▶주로 혼자 논다. 운동하고, 책보고, 개 데리고 산책하고, 음악 듣고, 촬영 가고, 커피 볶고, 빵도 굽는다. 하루가 바쁘다. 매일 6시간씩 책을 보고 성경, 불경, 주역을 필사한다.(그는 일주일 단위의 생활계획표를 만들어 실천하고 있었다.)

-성경, 불경을 함께 필사하는 이유가 있는가.

▶모두 다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 그 내용을 손으로 꾹꾹 눌러쓰면 마음으로 그 가치를 알게 된다. 이것 만한 독서법이 없다. 나는 만년필로 쓰는데 만년필로 하면 템포가 늦다. 속도가 늦으면 이해도가 깊어진다.

-옛날에는 집에서 하우스 파티도 하면서 떠들썩하게 놀았다고 들었다.

▶지인을 불러서 음악도 듣고 춤도 추었다. 모르는 사람끼리 모여 친해지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는데 실패했다. 의도했던 커뮤니케이션이 생기지 않았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다들 노는 방법들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저 모여 노는 것을 신기해하는 수준이었지 그 안에 들어가서 즐기는 법을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일 년에 몇 차례 100명씩 모이는 파티를 했으나, 지금은 20~30명이 모여 영화감상이나 음악감상을 하면서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있다.

-청도의 '소로'라로 불리고 있는데.

▶나는 로빈슨 크루소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자급자족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직접 만들어서 사용한다. 자신이 다 할 수 있어야 욕심이 없어진다. 직접 만들지 못하면 물건을 사러 다녀야 하고 원하는 디자인이 없으면 또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찾아보아야 한다. 이러다 보면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시골에서 살려면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빵 만드는 오븐이나 커피 로스팅 기계도 직접 만들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정형화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독학하는 스타일이어서 스스로 공부해가면서 나 나름의 오븐기도 만들고 커피 로스팅 기계도 만들었다.(그의 집에는 꽤 큰 작업실이 있다.)

-재주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사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재주가 많다는 이야기에 한 가지를 깊이 파고들지 못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면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왜 의사를 포기했나.

▶본과 2년 때 사진을 하고 싶어 그만뒀다. 의과대학이 나의 성격과도 잘 맞았다. 그런데 교육방법과 시스템이 싫었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었다. 이럴 즈음 지금의 아내가 카메라를 생일 선물로 사주었다. 의예과 2년 때였다. 그것을 가지고 사진을 찍으면서 의과대학 공부보다는 사진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의과대학을 포기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만만찮았을 텐데.

▶어머님은 혼자 많이 우셨다고 들었다. 아버님은 '니 알아서 해라' 하시며 더 이상 말씀이 없으셨다. 훌륭하신 분들이다. 짧은 인생, 자식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했다.

-당신의 자녀가 의과대학을 포기한다면.

▶당연히 우리 부모처럼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없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의사가 되면 함께 아프리카에 가기로 했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우리 아이처럼 돌보자는 데 의기투합했고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아프리카에 가지는 못했지만, 그 약속은 유효했다. 아이가 없으니 나에게 올인할 수 있었고, 자기계발에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었다. 다만 세상에 태어나서 아주 보잘것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역할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아 죄송한 느낌이 든다. 외롭지는 않다.

-가끔 의사의 길을 포기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나.

▶그 당시 의사가 되면 사진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의사 하면서 사진을 할 수는 있겠지만 '진짜 사진'은 못 찍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아예 그 길을 막아버렸다. 가끔은 의사가 되었으면 더 잘 살고 더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의과대학을 그만두고 스튜디오를 열었다.

▶1980년대 후반 광고 사진과 웨딩 사진을 했다. 지금처럼 웨딩 사진을 편집해주니 모두들 좋아했다. 문제는 영업이었다. 영업은 적성에 맞지 않았고 어느 순간 상업 사진이 나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성 있는 사진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고 그것으로 먹고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떤 예술 사진을 하게 됐나.

▶주역의 철학적인 내용을 사진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가령 어떠한 장소에 있는 돌을 찍는다고 하면 왜 그 돌이 이 시간에 여기에 이 형태로 있어야 하느냐는 것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에게 사진은 무엇이며 좋은 사진은 어떤 것인가.

▶사진은 시(詩)다. 시처럼 한 줄에 모든 것을 담아내야 한다. 아주 좋은 사진은 에너지와 슬픔이 함께 있다. 김지하 시인이 말한 '그늘'이 있는 아름다움이다. 이때의 그늘은 자잘한 슬픔이다. 그게 없는 사진은, 사진도 예술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하고 있는 사진작업은.

▶독도를 촬영하고 있다. 7월부터 내년까지 경북대 독도연구소에서 하는 프로젝트를 맡았다. 1년 반 정도 독도의 식물 생태계 등 독도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작업이다. 흑백으로 찍을 예정이다. 독도에 대한 관심이 너무 낮고, 그리고 너무 늦었다. 미국의 경우엔 카메라가 생긴 이후 어마어마한 자료를 흑백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인디언 추장 사진을 전부 찍었을 정도다. 그것처럼 독도의 모든 것을 흑백사진으로 남겨둘 생각이다.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년에 나사(NASA'미국우주항공국)에서 빅뱅의 흔적을 찾아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것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딱 '까불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며 겸손해지는 마음이 생겼다. 우주적인 차원에서 보면 나의 삶이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자유로워졌다.

-꿈이 있다면.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매일들이 늘 새로워져야 한다. 책을 보는 일상은 같지만 책을 읽는 내 마음은 매일 다르길 원하고, 자연을 보는 내 눈도 매일 달라지기를 원한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사진 강습현 focus1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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