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해체기술산업 종합연구센터(이하 원해연) 유치를 놓고 경북도와 부산'울산이 사활을 건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일찌감치 원해연 유치 당위성 발굴에 나선 경북도에 맞서 부산과 울산은 연합전선을 구축했고, 이들 지역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 공약으로 원해연 유치를 내거는 등 유치전이 가열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2019년 출범할 원해연을 놓고 대구경북과 부산'울산 간 '제2의 남부권신공항 혈투'를 벌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하는 중이다.
특히 경북도는 원해연 유치가 어려워지면 현재 중앙정부가 계획 중인 영덕 원전 설립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하고 있다.
◆시너지 효과 극대화, 경주가 최적지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원자력시설 해체는 정부, 지자체 주도 하에 원전해체 관련 공기업(한수원, 한전KPS, 한국전력기술, 한국원자력환경공단) 간 체계적 협력하에 추진해야 하는 국책사업인 만큼 경북이 최적지"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설계(한국전력기술), 건설'운영(한수원), 정비(한전KPS), 방폐물 처리처분(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한곳에 모여 있어 원자력의 단계적 처리가 완벽하게 이뤄지는 경북에 원해연이 들어와야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중론"이라고 강조했다.
김 도지사의 말처럼 경북에는 원자력 관련 핵심기관인 한수원(경주)과 한국전력기술(김천)은 물론 원자력 해체 필수기관인 원자력환경공단 및 방폐장이 있다. 해체 기술을 총괄하는 원해연만 들어서면 관련 기관을 모두 보유, 해체 안전성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국내 원전 설비의 절반이 몰려 있는 등 전국 최대 원전 집적지가 경북인 것도 원해연 최적지를 주장하는 이유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해체 대상 원자로 유형인 경'중수로 모두를 경북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유치 당위성을 부각시킨다. 다른 지역에 원해연이 들어서면 중수로 전문 원해연이 별도로 설립돼야 한다는 것이 경북도의 설명이다.
이용래 원해연 경주유치추진단장은 "원전해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약 90%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이다. 결국 현재 들어서고 있는 경주 방폐장과의 연계성 측면에서도 원해연은 경주에 와야 한다"면서 "한수원 입장에서도 해체센터가 경주에 들어오기를 바랄 수 있다.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방폐장의 원활한 운영 등 현안을 앞두고 지역 주민들의 설득과 이해가 필요한 상황인 만큼 해체센터 유치는 더욱 절실하다"고 말했다.
◆부산'울산 손잡고 경북에 맞서
부산시는 최근 시청에 3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원자력산업팀을 신설했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고리'월성 등 16기의 원전에 둘러싸인 원전 밀집지역이라는 점을 내세워 원해연 유치를 공약사항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부산'울산'경남 정치권과 연대해 지원사격에 나서고 있다. 정치권이 개입하면서 대구와 부산의 갈등 고리를 만든 남부권신공항 재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부산은 '신성장 동력을 찾지 못한 지자체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라 원해연 유치를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부산은 울산과 손도 맞잡았다. 지역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상호호혜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겠다는 틀 안에서 원해연 유치에 공동으로 나선 것이다. 건립 위치 등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이견이 많지만, 이 부분은 유치 이후 논의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한발 앞서 달리고 있는 경북도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양 지자체가 힘을 합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부산'울산 "우리가 적지다"
부산은 최근 폐쇄가 결정된 고리 1호기(기장군)가 있는 만큼 최고의 연구환경을 갖춘 부산에 원해연이 와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를 위해 부산시는 원해연 건립지로 기장군 고리 원전 인근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산업단지 안에 3만3천㎡를 확보해놨다. 이곳 147만㎡의 단지에는 중립자가속기치료센터, 수출용신형연구로, 전력반도체융합기반시설, 동남권원자력의학원 등 원자력 비발전 분야 대형 국책시설이 들어섰거나 들어설 예정이다.
부산시는 지난해 9월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원해연유치위원회'를 출범시킨 뒤, 유치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후 대학기관 및 관련기업 등 12개 기관이 원전해체기술을 위한 투자와 기업연구소 이전을 약속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부산은 기계'화학 등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원전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다"면서 "또 원전기자재 특성화 산업단지와 조선해양플랜트 산업기반, 연구로 등 대형 국책연구시설, 방사선 의과학산업단지, 대학 등이 원해연의 이른 정착과 발전을 돕는다"고 주장했다.
울산시는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원전 5, 6호기 인근 원자력 융합 및 에너지 특화산업단지 내 3만3천㎡에 원해연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울산도 부산과 마찬가지로 원해연 기술연구가 바로 실증화될 수 있는 화학단지와 중공업 등 산업인프라 여건이 최고라고 주장한다.
원해연이 들어서면 핵종분석 및 방사선 측정'관리 분야와 정밀화학 분야, 폐기물 처리 및 환경복원기술 분야 등을 맡고 있는 기업과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어 원전산업 시너지 효과가 높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울산에너지마이스터고등학교와 유니스트(UNIST), 국제원자력대학원으로 이어지는 원자력 교육기관이 집중된 점도 원해연 유치 명분으로 꼽고 있다.
◆제3의 지역도 가능?
정부가 원해연 입지를 남부권이 아닌 제3의 지역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준위방사선 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 처분시설 부지를 2020년까지 선정해야 하는데,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는 지자체에 원해연을 인센티브 성격으로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처분시설과 해체연구시설을 패키지 형태로 묶어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원전산업 연관성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두고 원해연 입지 선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뜻을 밝히면서 이 분석도 조금씩 힘이 실리고 있다.
막대한 경제적 파급 효과를 가진 원해연을 유치하기 위해 현재 경북과 부산'울산 등 남부권 지자체들이 가장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지만, 자칫 남부권신공항처럼 지역갈등으로 번질 경우, 정부가 제3자에게 '어부지리' 격으로 원해연을 내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정욱진 기자 penchok@msnet.co.kr
포항 박승혁 기자 psh@msnet.co.kr
▶원해연= 미래창조과학부는 2019년까지 1천473억원을 들여 7천550㎡ 규모로 이 시설을 건립한다. 현재 예비타당성조사가 진행 중이며, 내년부터 본격적인 부지선정 및 설계에 들어갈 예정이다.
원해연은 제염부터 핵폐기물 처리까지 원전 사후처리 전 과정(back-cycle)을 연구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해체 기술과 관련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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