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태맹의 시와함께]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신현림 (1961~ )

불타는 구두, 그 열정을 던져라

지루한 몸은 후회의 쓸개즙을 토하고

나날은 잉어떼가 춤추는 강을 부르고

세상을 더럽히는 차들이 구름이 되도록

드럼을 쳐라 슬픈 드럼을 쳐라

여자인 것이 싫은 오늘, 부엌과

립스틱과 우아한 옷이 귀찮고 몸도 귀찮았다

사랑이 텅 빈 추억의 골방은 비에 젖는다

비오고 허기지면 푸근할 내 사내 체온 속으로

가뭇없이 꺼지고 싶다는 공상뿐인 내가 싫다

충치 같은 먼 사내는 그만 빼버리죠 아프니까요

당신도 남자인 사실이 고달프다구요

인간인 것이 참 힘든 오늘 함께 산짐승이나 되어

해지는 벌판을 누비면 좋겠지만

인간이라는 입장권을 가졌으니 지루한 제복을 넘어

닫힌 책 같은 도시와 사람 사이에서

그 모든 것 사이에서

응시하고 고뇌하고 꿈꾸며 전투적으로 치열하렵니다(……)

(부분.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계사. 1994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전통 속에서 우리의 삶은 자연적 무질서를 넘어 질서 잡히는 것이 당연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훈육된다. 그리하여 자연으로서의 육체는 그 '사회'라는 큰 질서로부터 역설적으로 분리되고 단절된다. 페미니즘 철학자 이리가레(1932~)는 "육체는 그 감각과 생생한 지각, 예컨대 낮과 밤, 계절, 식물의 생장 등으로부터 소원해진 사회학적 규칙과 리듬에 묶여 있다. 이는 빛과 소음, 음악, 향, 심지어 자연적 맛의 경험조차 더 이상 인간적 자질로 계발되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지각을 영적으로 발전시키는 훈련을 받기보다, 육체는 더 추상적이고 사변적이고, 사회-논리적인 문화를 위해 감각으로부터 분리된다"고 지적한다. 어쩌면 페미니즘도 질서를 뛰어넘는 이 여성적 감각의 복원이 아닐까?

그러나 남성 필자로서 페미니즘 이해의 궤도 위로 올라서기가 어렵다는 고백을 해야겠다. 어렵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기보다 여성의 그 감각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 페미니즘이 평등-자유의 중요한 동력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한다고 해도, 내가 감각의 시인이라 해도, 나는 여성들의 그 감각의 궤도에 진입하기 어렵다. 이 시인이 던지는 '불타는 구두'를 나는 반밖에 감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바라건대, 나는 세상의 여성들이 '응시하고 고뇌하고 꿈꾸며 전투적으로 치열'한 '시민'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성인 내가 그 여성들의 '불타는 구두'를 견딜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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