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대중의 검열

독소전쟁 때 포병 장교로 참전했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8년간 혹독한 강제 노동을 해야 했던 것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 때문이었다. 전쟁 초기 스탈린의 실책을 지적한 대목이 있었는데 검열에 걸린 것이다.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암병동' '수용소군도' 등 그의 소설은 강제 노동 수용소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검열이 명작 탄생의 시발점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공산주의 국가에서 '사상 검열'은 편지에서 출판물까지 광범위하고 치밀했다. 이에 저항한 지식인, 예술가, 학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기 검열'이란 순응을 택했다.

민주주의 사회도 마찬가지다. 검열을 국가기관이 아니라 미몽(迷夢)과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사로잡힌 대중과 지식인의 함성이 수행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공산주의 비판은 반동(反動)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소련의 국가 폭력에 면죄부를 준 사르트르 등 서구 좌파 지식인의 행태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검열했고, 스스로 진실을 외면하도록 자기 검열도 했다.

이런 위선에 대해 소련 체제의 폭력성을 고발한 소설 '한낮의 어둠'을 쓴 아서 케스틀러는 이렇게 고발했다. "편안한 민주주의의 재판 절차에 내재한 결함을 비난할 때 우리의 목소리는 얼마나 정의로운 분노로 울려 퍼졌는가.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에서 우리의 동료들이 재판도 유죄선고도 없이 죽어나갈 때 우리는 어떻게 침묵했는가. 우리는 모두 양심의 찬장에 해골을 숨기고 있다."

이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진영에도 해당한다. 그들은 현행 검인정교과서의 '좌편향'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은 채 국정화를 악(惡)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집필진에 대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공격 때문인지 집필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됐던 학자들 중 상당수가 집필 참여를 고사하고 있다고 한다. 대표 집필진으로 내정됐던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도 사퇴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여기자에 대한 성희롱 논란이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최 교수가 사퇴하지 않았을까? 그에 대한 인신공격의 수위로 보아 장담할 수는 없을 듯하다. 대중의 검열에 학자가 자기 검열로 순응하는 사회. 이를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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