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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 '햇볕'들의 파탄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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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하는데 별 기여도 못했으면서도 떼를 써 '승전국' 지위를 얻은 프랑스는 베트남을 재식민지화하려다 박살이 났다. 1954년 베트남 북서부에서 벌어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다. 프랑스군 1천500명 이상이 사망했고 4천 명 이상이 부상했으며 수천 명이 포로가 됐다. 제국주의가 시대착오적 망상임을 깨닫게 한 처참한 패배였다. 그 원인은 디엔비엔푸에 이르는 도로와 다리를 파괴하면 베트남이 무기를 옮길 수 없다고 확신한 데 있다. 프랑스는 베트남이 자기처럼 차량으로 무기를 수송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베트남은 사람의 힘으로 전투 물자를 옮겼다. 남부여대(男負女戴)로 공습을 피해 낮에는 쉬고 밤에 움직였다. 무거운 대포는 분해해서 옮긴 뒤 재조립했다. 그렇게 해서 베트남은 무려 8천286t의 무기, 탄약, 식량을 격전지로 가져갔다. 프랑스는 이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자기본위적 착각을 '거울 이미지'라고 한다. 상대도 나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것으로 믿는 인지함정이다.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은 이런 인지함정의 포로였다. DJ는 북한을 지원하면 대화로 나올 것으로 봤다. 북한도 우리처럼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한 것이다. 공상이었다. 햇볕정책이 남긴 것이라고는 DJ 개인의 노벨 평화상 수상뿐이다. DJ는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했지만, 노무현정부 때인 2006년 1차 핵실험으로 햇볕을 끝장냈기 때문이다.

이때 햇볕을 거뒀어야 했다. 하지만 이후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햇볕의 울타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교류'협력'이란 이름으로 햇볕을 계승한 노무현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이명박'박근혜정부의 노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명박정부는 북한에 상대적으로 엄격한 듯한 제스처를 취하긴 했다. 하지만 핵개발을 틀어막는 실질적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교류'협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게 그거였다. 이런 햇볕의 연속과 누적의 결과가 4차례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다.

교류'협력이 북한을 변화시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변화는 잘하면 민주화로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변화는 북한 김씨 왕조에는 씨도 안 먹힐 소리다. 이는 소련 붕괴 과정을 복기(復碁)만 했어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고르바초프의 목표는 퇴보하는 소련 사회의 '부분 수리'였다. 그는 명령경제 체제와 시장의 요소를, 공산당의 권력 독점과 정치적 다원주의를 결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상이었다. 명령경제와 시장, 권력 독점과 다원주의는 병존할 수 없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로 검열과 통제와 억압이라는 공산체제의 버팀목에 약간의 균열을 가했는데도 소련 체제는 급속히 무너져내렸다. 고르바초프는 이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나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전 과정을 내가 의도한 틀 내에서 관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웠다."

김씨 왕조는 이를 지켜보면서 제한적 변화는 결국 전면적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북한이 그렇게 오래도록 햇볕을 받았으면서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햇볕이건 교류협력이건 '남한' 정부의 대북 정책은 북한 체제의 본질에 대한 의도적 외면, 선의를 베풀면 상대도 선의로 보답할 것이란 소망적 사고, 북한은 어쨌든 변화할 것이란 환상의 기괴한 조합이었다.

이런 사이 30억달러가 넘는 돈이 북한에 '지원'됐다.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일취월장하고 있는 북한의 핵 능력이 말해준다. 박근혜정부가 대북정책을 '교류'협력'에서 '체제 교체'까지 고려한 '봉쇄와 압박'으로 전환한 것은 늦었지만,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다행이다. 하지만 이를 위안으로 삼기에는 그동안 허비한 시간과 그 비싼 수업료가 너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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