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과 에콰도르 강진으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면서 구호단체들이 앞다퉈 지진 성금 모금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낸 지진 성금은 과연 어떻게 쓰이고 있는 걸까? "제대로 쓰이긴 하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는 시민들도 상당수다.
지난 2010년 1월 아이티 지진 때 모금된 거액의 성금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고 통장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국회의원의 폭로가 있으면서, 시민들의 의심의 눈초리는 더욱 짙어졌다.
201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강명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아이티 성금 66억원이 정기예금에 잠자고 있다. 성금으로 '이자놀이'를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강 의원은 국제적십자연맹에 지원한 6억7500만원과 의료비 지원 4억원을 제외하고는 아이티 주민에게 전달된 돈이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이 사실을 접한 시민들은 대한적십자사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됐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매일신문이 취재한 결과, 6년이 지난 현재 아이티 지진 성금은 모두 적법하게 아이티의 재건 복구를 위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적십자사는 이에 대한 감사보고서까지 첨부했다.
2010년 1월 12일 발생한 아이티 강진(진도 7.0)은 사망 22만2천570명, 부상 30만명, 이재민 230만명을 기록했다.
당시 적십자사가 한국에서 모금한 성금은 모두 96억8천119만600원. 기부물품 1억4천13만4561원과 이자수익 2억2천42만946억을 합치면 모두 10억4천174만6107원에 달한다.
이 중 적십자사는 지진 발생 초기 긴급구호활동을 위해 약 13억원을 썼으며, 이후 재건 복구활동에 약 84억원을 지출했다.
기부금품 모집비용 및 행정관리비에는 3억3천195만130원이 소요됐다. 모집비용은 전체 금액의 13% 이하를 사용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적십자사는 이에 훨씬 못 미치는 3.31%의 비용을 지출했다.
지진이 발생한 시점은 2010년 1월. 하지만 강 의원의 폭로가 있었던 것은 같은 해 10월로, 당시에는 긴급 구호자금만 투입됐을 뿐 상당부분의 자금이 장기적인 재건복구를 위해 남아있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장기 재건복구 작업은 전세계 구호협회 회원사들과 아이티 정부와의 논의를 거쳐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진행됐기 때문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폭로' 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지진 성금 모금에 불신을 갖는 시민들이 늘어났다.
권진열(35)씨는 "지난해 4월 네팔 지진 때 성금을 내고 싶었지만 아이티 지진 성금이 적금 통장에 잠들어있다는 뉴스가 생각나 보내지 못했다. 대신 네팔에 거주하면서 직접 구호활동을 하고 있는 외국인 친구를 통해 성금을 냈다"고 했다.
이런 영향으로 대한적십자사의 네팔 지진 성금 모금은 아이티 지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줄어들었다.
대한적십자사는 100억원을 목표로 모금을 시작했지만 총 모금액은 51억8천3백57만1747원에 그쳤다. 아이티 때와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금액이다.
네팔은 지난해 4월 25일 강도 7.9와 6.8의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9천여명이 사망하고 2만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지진 발생 1년이 지난 지금도 400만명이 이재민 생활을 하고 있는 현재 네팔에는 여전히 구호활동이 계속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모금된 51억8천여만원 중 20억원을 긴급구호품과 구호인력 파견에 사용했으며, 나머지 31억6천200여만원은 통장에 남겨두고 있다. 추후에 계속될 재건 사업을 위해 남겨둔 비용이다.
이같은 오해가 빚어진 것은 성금 '모금'과 '집행'의 시간차 때문이다. 구호단체에 따르면 성금은 크게 긴급구호와 사후 재건 프로그램 두 부분으로 나눠 지출된다.
이재승 대한적십자사 홍보기획팀장은 "지진 등 해외 재난사고에 대한 지원은 긴급구호와 재건복구사업 두가지 파트로 나뉘어 진행된다"면서 "아이티 지진 당시 한국은 향후 5년 동안 임시혈액원 설치 및 운영과 전산장비 지원, 콜레라 대응 활동과 말라리아 예방 지원, 임시가옥 제공과 주택개량 지원 등 다양한 재건복구 사업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성금 사용 논란은 미국에서도 있었다. 미국 적십자사의 경우 지난 2010년 아이티 대지진 피해자들의 집을 지어주기 위해 성금 500만 달러(55억 4250만원)를 모으고도 달랑 6채만 지어줬다는 보도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미 적십자사는 보도자료를 내고 최근 4년간 아이티에 13만명의 거주지를 마련했다고 발표했지만, 미국 언론들은 적십자사가 아이티 대지진 피해자들 위해 지어진 집은 지난 4년간 6채에 불과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아이티에서 특사로 활동했던 할리우드 배우 숀 펜은 허핑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얼마 전 언론이 미 적십자사에 대해 제기한 비판에 매우 화가 났다"면서 "공식적으로 'J/P HRO'가 적십자사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은 총 298만7000달러(약 33억 원)에 달하고, 이 밖에도 적십자사가 수많은 아이티 구호단체들에 준 재정 및 물자 도움은 수치화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J/P HRO는 아이티의 난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펜이 직접 만든 현지 구호단체다.
현재 전세계 '불의 고리'가 다시 끔틀거리는 가운데 일본에서는 지난 14일 규모 6.5의 첫 지진이 구마모토현을 강타한 후 직간접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62명으로 집계돼고 있다. 또 지난 16일 발생해 70년 만의 최악의 재난으로 평가되는 에콰도르 지진은 7.8의 강진과 700여 차례의 여진으로 현재까지 654명이 숨지고 1만 6601명이 다쳤다.
이에 따라 대한적십자사는 에콰도르 돕기 성금을 다음달 21일까지 5억원 모금을 목표로 모금 중이다. 일본은 자력으로 복구하겠다는 입장으로 공식 모금하지는 않는다.
이 홍보기획팀장은 "재난지역의 구호활동은 상상할 수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이뤄진다. 의혹의 눈길보다는 따뜻한 격려의 눈길로 봐 주면 감사하겠다"면서 "특히 대한적십자사는 정부의 정기적인 감사를 받으며 투명한 회계처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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