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고정관념 깨기

현대미술은 마르셀 뒤샹의 '반예술' 개념 이후 결코 평온한 장이 될 수 없었다. 기존 미술에서의 고정관념, 선입견, 금기를 깨뜨려버린 '반예술' 개념은 역설적으로 미술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이후 진취적인 예술가들은 늘 새로운 것에 도전했고 새로운 것은 관람자들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추함, 혐오스러움까지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충격 가치'도 낳았다.

패션에서 이런 역할을 한 디자이너는 '장 폴 고티에'라 할 수 있다. 그는 상식을 뒤엎는 과감한 시도로 패션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한 디자이너로 불린다. 고티에는 1976년 첫 번째 패션쇼를 시작으로 고도의 럭셔리 패션을 추구하는 폐쇄적인 '오트쿠튀르'(Haute Couture)에서 '프랑스 패션의 악동'이라는 별명과 함께 늘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된다.

1952년 파리에서 태어난 고티에는 패션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의 스케치를 보고 남다른 재능을 발견한 피에르 가르뎅에 의해 발탁되어 18세에 패션계에 입문했다. 고티에는 먼저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타일로 주목을 받았다. 마돈나가 1990년 월드투어 콘서트에서 입고 나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콘브라'(Cone bra) 패션은 코르셋을 겉옷으로 입는 기발한 발상의 산물이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몸을 가두던 코르셋은 위풍당당하게 가슴을 내밀며 도발적인 매력을 내뿜는 새로운 여성성을 강조하는 장치가 된다. 또 영국 해협에 접한 브르타뉴 지방의 전통적인 어부의 옷은 고티에를 상징하는 마린룩이 되었다.

고티에가 패션에서 추구하는 고정관념 깨기는 톱모델들만 등장하는 런웨이에 나이 든 사람, 살이 찐 사람같이 일상에서 늘 마주치는 일반인들을 세워 하이패션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것에서도 나타났다. 또한 그는 프랑스의 카페에서 웨이터들이 입는 긴 앞치마에서 착안한 치마를 남성패션에 도입했다.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규정된 남성과 여성,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시도되었다.

현재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고티에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11년 캐나다 '몬트리올 미술관'의 기획으로 개최된 이 전시는 다양한 민족과 인종을 담은 '도시정글', 여러 장르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메트로폴리스' 등 총 7개의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런웨이 위 마네킹에 3D 프로젝터를 통해 움직이는 표정을 입혀 관람객들과 소통하는 라이브 무대의 느낌도 살리고 있다.

인종, 문화, 성별의 틀과 통념적인 '이상적 아름다움'을 거부하며 패션의 사회적 기능을 넓혀온 파격적인 고티에의 패션에는 유머와 유쾌함, 즉 생동하는 삶의 즐거움이 깔려 있다. 그는 지금도 고정관념을 깨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패션의 최첨단에 서 있는 현재진행형 디자이너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