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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진 납기일·늘어난 인건비…"우리 회사 막내 직원은 40대"

장기 불황 드리운 대구 제조업, 대책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 성장 둔화가 장기화하면서 대구경북 제조업체가 고난을 이겨내고자 발버둥치고 있다. 대구시 또한 기업 지원책을 찾느라 고용대책과 긴급 자금지원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지역 한 금속제조업체 직원이 철판 그라인딩 작업을 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 성장 둔화가 장기화하면서 대구경북 제조업체가 고난을 이겨내고자 발버둥치고 있다. 대구시 또한 기업 지원책을 찾느라 고용대책과 긴급 자금지원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지역 한 금속제조업체 직원이 철판 그라인딩 작업을 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 성장 둔화가 장기화하면서 대구경북 제조업체가 고난을 이겨내고자 발버둥치고 있다. 대구시 또한 기업 지원책을 찾느라 고용대책과 긴급 자금지원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대구의 제조업 기반인 성서산업단지(또는 서대구산업단지) 전경. 매일신문 DB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 성장 둔화가 장기화하면서 대구경북 제조업체가 고난을 이겨내고자 발버둥치고 있다. 대구시 또한 기업 지원책을 찾느라 고용대책과 긴급 자금지원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대구의 제조업 기반인 성서산업단지(또는 서대구산업단지) 전경. 매일신문 DB

수년째 이어진 글로벌 불경기 탓에 성장 둔화가 장기화하면서 지역 제조업체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지 오래다. 기업들은 단박에 매출을 늘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접었고, 기술 개발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만들려는 연구 기업들도 매출과 직결되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발버둥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구시는 기업 지원책을 찾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기'인건비 부담, 중년 직원들은 업무 힘겨워해"

대구 달성군 논공읍 섬유제직업체 A사. 제직기를 조작하는 40, 50대 직원들이 각자 담당한 직기들을 오가며 실을 보충하거나 경사'위사를 올바른 위치에 설치하고 있었다. 이곳 현장직 직원 30여 명은 하루 6시간씩 4교대로 번갈아 근무한다. 실이 느슨해지거나 엉킨 곳은 없는지 살피는 직원들은 기계를 슬쩍만 봐도 이상을 알아차릴 만큼 숙달돼 있다. 하지만 50여 대의 기계가 들어선 대규모 생산라인을 단 7명이서 돌보기에는 힘겨운 기색이 역력했다.

직원 전모(56) 씨는 "10년 전에 비해 생산 일감이 많이 줄었고 기계가 자동화된 영향으로 많은 직원이 필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직원 평균 연령이 50대인 탓에 기계 이상을 금방 파악할 만큼 눈이 좋지 않고, 넓은 공장을 거의 쉬지 않고 돌아다니다 보니 체력도 달린다"고 털어놨다.

A사는 1970년대에 설립해 섬유 제직과 수출입 등의 사업을 하며 몸집을 키웠다. 1990년대에는 직원 500명이 일하는 가운데 최고 연간 200억원의 매출까지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중국 등 외국 업체와 경쟁하며 매출이 점차 줄어든 결과 지난해 연 매출은 100억원에 그쳤다. 제직 공장 매출만 따지면 전성기 때의 30%도 채 안 된다.

심지어 벌어들인 수익의 30%는 전기요금으로, 다른 40%는 인건비로 지출한다. 매출이 점차 줄어드는데 고정비용은 거의 변동이 없으니 날이 갈수록 매출 감소폭이 커진다.

A사 대표 김모 씨는 "직원들이 다칠 때를 대비해 재해 보장보험에 가입하려 했으나 나이 든 직원들이 10년 뒤에도 다들 일하고 있을지 알 길이 없어 가입을 주저했다"며 "5년 전 입사한 막내 직원이 40대 초반이다. 초봉이 3천만원 전후인데도 젊은이들은 입사를 꺼리니 앞으로 회사를 5년은 더 운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역 섬유 제조업의 미래가 너무 어둡다"고 했다.

◆"납기 맞추려 업무시간 늘려, 기술개발에 사활 달려"

대구 달서구의 합금 제조업체 B사는 2012년 연 매출 360억원에서 2013년 353억원, 2014년 310억원으로 줄어들다 지난해는 매출이 200억원대로 떨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올해는 연말까지 260억원 매출을 올릴 것으로 업체는 내다보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3년 넘게 경기 침체가 이어진 가운데 올해는 해운, 조선업, 건설 경기까지 나빠 특히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주 납품 거래처가 해운'건설, 기계'금속업체인 B사는 올해 납품업체들이 모조리 어려움을 겪는 탓에 주문량이 3분의 1 이상 줄어 고심이 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업체가 요구하는 납기 일정마저 짧아진 탓에 직원들은 같은 임금을 받고도 업무시간이 늘어난 상황을 버티지 못해 하나둘씩 다른 업체로 떠나갔다. 원가 절감에 대한 부담이 큰 탓에 B사는 대대적인 공채 대신 수시 채용을 통해 필요 인원만 보충하고 있다.

B사는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려 신제품 개발 실적을 확대할 계획이다. 거래가 끊겼던 기존 거래처와도 납품 계약을 재개할 전망이어서 사정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설명이다.

B사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매출 감소분을 회복하는 것이 목표인데, 신기술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 큰 부담"이라며 "대구에서 전자, IT 업종에 대한 지원은 많은데 특수합금 등 비주류 업종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은 많지 않다. 연구개발에 필요한 우수한 청년 인재도 수도권에 몽땅 빼앗기고 있다.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대해 대구시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설비 투자로 생긴 부채 걱정, 인건비라도 줄일까 고민"

국산 자동차 차체 부품을 생산하는 대구 달서구 금속 제조업체 C사는 2010년대 들어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고심이 크다. 완성차 대기업들이 중국과 미국 등지로 생산 공장을 옮겨가면서 이를 따라 1차 협력업체가 외국으로 옮겨가자 2, 3차 업체에 대한 국내 생산 주문이 줄어든 영향이다.

현대'기아차의 국내 생산 비중이 컸던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연간 300억원대 매출을 올렸으나 지난해부터는 연 100억원 매출도 힘겨운 상황이다.

지난해부터는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판매량이 줄었고, 올해 들어서는 7, 9월 잇단 현대차 노조 파업까지 겹치면서 국내 현대차 생산라인이 수십일 간 멈춰서다보니 대금 지연 및 납품 감소 피해도 만만찮았다. 그럼에도 현대차가 보유하거나 1, 2차 업체 및 C사가 갖고 있는 재고도 많은 상황이라 올 연말까지 앞선 손실을 메울 만큼의 추가 납품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이 업체 관측이다.

C사 대표는 "납기를 맞추고자 토'일요일 당번 근무자를 불러가며 공장을 돌리면 요즘 세상에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게 사실이지만, 10년 전 공장이 쉴 새 없이 돌던 때와 비교하면 요즘엔 휴일에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일감이 없으니 직원들이 외려 풀이 죽은 모양새"라며 "지난 상반기만 해도 지난해보다 매출이 20% 이상 줄어 시설에 투자한 비용을 회수할 수나 있을지 걱정이다. 내년에는 직원들 임금을 동결하든지, 계약직 직원을 줄이든지 해야 할 것 같아 고민이 크다"고 했다.

◆대구시, 고용'자금 대책 마련에 고심 중 - (별도 박스 가능)

이런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고자 대구시는 고용대책과 긴급 자금지원책을 적극 펼치려는 계획이다.

대구시는 우선 올해 청년고용 촉진 대책을 세우고 ▷미스매치 해소 ▷청년 수요자 기반 직업능력 배양 ▷채용연계 취업지원 강화 ▷대학 리크루트 투어 확대 ▷청년 일자리 지원기관 네트워크 구축 ▷청년 1+채용하기 ▷전통시장 청년 상인 육성 ▷대구 패션창조거리 조성 등의 정책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

대구시 경제정책과 금융지원팀과 대구신용보증재단 등은 기업의 설비'운영'투자자금 수혈을 위한 긴급 자금 지원을 하고 있다. 시는 기존 분기별로 지원하던 정책자금을 올해는 수시로 신청을 받아 지원하고 있다.

구인난에 허덕이는 기업을 위해서는 각 산단 관리공단을 통한 구인구직박람회로 구인 기업과 구직자를 연결해주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지역 기업들이 공장 건립을 미루는 등 투자 시기를 조율하고 있고, 한진해운'삼성전자 등의 예상치 못한 어려움으로 인해 지역 기업에 대한 생산 주문이 급감하는 등 올해 들어 지역 경기가 더욱 경색되고 있다. 지역 기업의 고충이 크다는 사실을 아는 만큼, 대구시는 원스톱기업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리는 기업에 언제든 도움 방안을 안내하고 고충을 덜어 주고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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