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도 없는데 보금자리마저 내줘야 한다. 공황장애'우울증을 앓는 아내와 6세 어린 딸아이와 어디로 가야 하나. 막다른 길에 놓인 30대 가장의 어깨는 천근만근 무거웠다.
한숨만 늘어가던 차에 그나마 남은 전 재산인 가전제품마저 강제 경매되던 날, 그의 판단력은 흐려졌다. 무기력한 자신을 질책하던 가장은 강도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류모(39) 씨는 3개월 전 다니던 택배 회사를 그만뒀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7시까지 온종일 이어지는 격무에 버틸 수가 없어서였다.
실직 후 일거리를 찾아 나섰지만, 여의치 않았다. 날품팔이 일을 하며 하루하루 근근이 버텼다. 하지만 2015년에 진 300만원의 빚은 이자까지 붙어 2년 새 500만원으로 불어났다.
빚 독촉을 하던 대부업자는 류 씨의 재산에 압류를 걸었다. 류 씨 임대주택 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티브이'냉장고 등 생활 물품에 빨간 압류 딱지가 나붙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월세 16만원짜리 임대주택에서 떠나야 할 처지가 됐다. 집세가 밀려 보증금 160만원을 다 까먹어서다.
오는 11월 23일 비바람으로부터 세 가족을 지켜주던 보금자리를 떠나면 그다음은….
지난 25일 오전 압류 딱지가 붙은 류 씨의 집 안으로 법원 집달관과 대부업자, 경매자들이 들이닥쳤다. 류 씨는 좌절했다. 그러고는 집 안에 있던 장도리를 상의 속에 감추고 집을 나와 걸었다.
버스비 1천400원도 없어 3시간 동안 약 5㎞를 걸었다. 그의 발길이 멈춘 곳은 한 연로한 노인이 운영하는 화공약품 취급업소. 류 씨가 택배 배달일을 하던 중 2주에 한 번꼴로 들르던 가게였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노인의 뒷목을 잡고 장도리를 휘둘러 위협하며 "돈만 내놓으면 다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게 110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현금을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류 씨는 한숨을 내쉬는 아내에게 "못 받은 일당을 받아왔다"며 110만원을 건네고 집을 나와 서성였다.
돈 한 푼 없이 밖을 나도는 남편이 딱했는지 아내는 딸의 손을 잡고 나와 '따뜻한 밥 한 끼 먹자'며 남편을 불렀다. 이 모습은 강도사건 신고를 받고 추적에 나선 경찰에 포착됐다.
경찰은 6세 딸 앞에서 류 씨를 차마 검거할 수 없어 류 씨가 가족과 떨어져 있을 때까지 조용히 뒤따라 갔다.
류 씨가 딸과 잠시 멀어진 사이 경찰은 류 씨를 연행했다. 경찰서로 향하는 차 안에서 류 씨는 곧장 강도 혐의를 인정했다. 경찰은 류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살 곳을 잃을 처지에 놓인 류 씨 가족에 대해서는 "피의자 가족을 지원한 사례가 거의 없지만, 류 씨 아내와 딸을 도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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