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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다리는 왜 저렇게 지었을까…『다리 구조 교과서』

일본인 교량공학자 현장 경험 토대 한·중·일 유럽의 유명한 다리 비교

대구도시철도 3호선이 지나는 금호강 횡단교에 야간 경관조명이 점등되어 아름다운 볼거리를 선보이고 있다. 매일신문 DB
대구도시철도 3호선이 지나는 금호강 횡단교에 야간 경관조명이 점등되어 아름다운 볼거리를 선보이고 있다. 매일신문 DB

다리 구조 교과서/ 시오이 유키타케 지음/ 김정환 옮김, 문지영 감수/ 보누스 펴냄

크고 긴 다리는 만들어질 때마다 종전의 기록을 경신한다. 모양도 갖가지다. 쓰러진 통나무로 다리를 놓던 인류가 수심 100m 바다에까지 다리를 놓게 됐다. 다리가 생기면서 생활권은 넓어지고, 교류와 무역도 늘었다. 하지만 다리는 언제나 전문가 '토목쟁이'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제각기 다른 모습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다리.

다리 교과서가 나왔다. '다리 구조 교과서'는 20년 넘게 현장에서 활동한 일본 출신 교량공학자 시오이 유키타케가 펴냈다. 제목이 알려주듯 다리를 설계하고 시공할 때 고려할 사항부터 발전사, 가설 공법, 지지 원리 등 다리에 관한 기초지식을 총망라했다. 정말 교과서다. 저자가 일본인이다 보니 일본에 가설된 다리가 많이 보이지만 유럽, 미국뿐만 아니라 한'중'일의 유명한 다리를 비교하고 공법도 꼼꼼히 살펴봤다. 또 전문용어나 토목기술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만, 페이지 절반은 그림이나 사진이어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딱딱하고 복잡한 기술서가 아니다. 다리를 건설한 인력이 승려였던 까닭, 궁궐 앞 명당수 위에 놓은 다리의 의미, 뼈아픈 근대사를 지닌, 남북이 함께 만든 '승일교'에 대한 이야기도 다룬다.

저자는 다리의 상부구조를 눈에 보이는 모습(재료)에 따라 나눴다. 구조 형식에 따라 아치교, 형교, 트러스교, 라멘교로, 주탑에 연결해 보를 지탱하는 케이블 형식에 따라 현수교, 사장교로 구분했다.

아치교의 원리는 모래밭에서 만든 두꺼비집과 같다. 두꺼비집에서 손을 빼도 흙이 무너져내리지 않는 건 굴 주위에 압축력이 생겨 무너지지 않는 아치 작용 때문이다. 석조 아치교는 철재, 시멘트 등 강재가 보급되기 전까지 아치교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유럽 명소로 꼽히는 세고비아 수도교, 피렌체 베키오 다리, 프라하 카렐교, 퐁뇌프의 다리는 모두 석조 아치교라는 공통점이 있다. 국내에 대표적인 석조 아치교는 불국사 백운교와 청운교, 연화교와 칠보교를 들고 있다. 선암사 승선교나 벌교 홍교도 여기에 속한다. 강아치교는 호주 시드니 하버 브리지를 떠올리면 된다.

형교는 통나무 다리에서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단순보를 양쪽에서 떠받치는 형태로 하중에 의한 압축 응력(누르는 힘), 인장응력(늘어나는 힘)으로 발생하는 휨이 특징이다. 한강에서는 형교를 자주 볼 수 있다. 양화대교는 우리나라 기술의 힘으로 처음 세운 한강 다리다. 서강대교'천호대교'원효대교'노량대교는 모두 형교의 보 구조를 변형한 것들이다. 엑스트라도즈드교는 긴 형교를 만들고자 사장교처럼 만든 것으로 야경이 환상적인 대구도시철도 3호선 금호강 횡단대교가 여기에 속한다.

트러스교는 봉 부재를 삼각형으로 짜서 작용하는 힘을 다르게 만든 구조다. 사실 철교가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한국 최초의 트러스교는 한강철교다. 최초로 신기술을 도입한 교량이지만, 침탈 목적의 일본에 의해 놓인 아픈 역사를 가진 다리다. 부산 광안대교와 서울 동호대교는 트러스교의 지간을 넓게 한 연속 트러스교이고, 지간 549m에 이르는 캐나다 퀘벡교가 세계에서 가장 긴 트러스교다. 1994년 등굣길'출근길 시민 3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성수대교는 게르버트러스교였다. 교각 사이 다리 중간 부분이 무 썰듯 댕강 떨어져 나간 건 이음매가 용접이 허술해 트러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고 연결부도 부식됐기 때문이었다.

라멘교는 부재 사이의 결합부를 일체화한 구조로, 지진에도 낙교하지 않는 이점을 가진 다리다. 청담대교와 같은 π 형 라멘교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라멘교다. 라멘교는 일반적으로 딱딱한 느낌을 주는데 평범하고 경제성이 뛰어나 고속도로'철도 고가교로 많이 쓰인다.

케이블에 부재를 매달아 하중을 지탱하는 다리에는 현수교와 사장교가 있다. 현수교는 높은 주탑을 주 케이블로 연결하고 주 케이블에 매달린 로프로 노면을 지탱한다. 지간이 길수록 하중이 커지기 때문에 가벼운 보와 강한 케이블로 만들어내는 긴 경간은 토목기술 전쟁의 승자를 가른다. 영종대교, 남해대교가 이에 속하며 광안대교는 현수교 양측에 트러스교가 복합된 형태다. 2013년 개통된 이순신대교는 주경간(두 주탑 사이의 거리)이 1천545m에 이르는 장대 현수교로, 현재까지 완공된 다리 가운데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지간을 자랑한다. 일본의 아카시해협대교는 지간 1천991m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다. 잘 알려진 현수교 가운데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뉴욕의 브루클린 브리지가 있다.

사장교는 주탑에 연결된 경사 케이블이 노면을 직접 연결해 보 하중과 통행 하중을 감당한다. 인천대교는 아치교, 형교(엑스트라도즈드교)와 합쳐진 형태로 국내 최장 경간(800m)을 기록하고 있다. 대구 명물이 된 도시철도 3호선 대봉교 구간도 사장교에 속한다.

올해 3월, 2023년 개통하면 세계 최장의 현수교가 될 '차나칼레대교'의 수주를 한국 기업들이 따냈다. 우리 기술 수준을 다시 한 번 세계에 알린 쾌거다. 1950년대 열악한 장비, 홍수나 수심 등 악조건 속에서도 신용을 무기로 고령교 보수공사에 성공했던 현대건설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지 60여 년 만이다.

다리를 건너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야경을 장식하는 다리가 예쁘다고 하면서도 정작 어떻게 지어졌는지는 잘 모른다. 다리를 잘 안다고 해도 사고가 일어날 수는 있다. 하지만 관심이 커진다면 부실이 줄어들 수도 있다. 아니면 사진 찍는 재미가 늘어날 수도 있다. 248쪽, 1만3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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