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밀양 화재 참사] 가연성 내장재 화마 키우고 환자 결박 인명피해 늘려

제천 참사 때와 같은 내장재, 엄청난 양의 유독가스 내뿜어 사망 38명 중 34명 질식사

28일 경남 밀양 시내에 세종병원 화재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28일 경남 밀양 시내에 세종병원 화재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는 비교적 빠른 시간에 현장에서 불길을 잡았음에도 불구,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사망자 38명 중 34명이 유독가스 질식사로 나타나면서 피해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건 수사본부(이하 수사본부)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처럼 가연성 내장재가 엄청난 유독가스를 내뿜었고, 무분별한 불법 증축과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비상용 발전기 문제 등이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고 있다.

◆죽음의 가스 내뿜은 가연성 내장재

수사본부는 27일 2차 현장감식 및 수사상황 브리핑에서 "1층 응급실 내부 천장에 매립된 전선에서 시작된 불이 천장 내장재를 태우면서 급속도로 번졌다"고 밝혔다. 특히 천장 단열재로 쓰인 발포 폴리스타이렌(일명 스티로폼)이 유독가스를 내뿜어 피해를 키운 것으로 파악했다. 발포 폴리스타이렌은 공사 비용이 저렴하고 시공 기간도 짧아 건물 외벽이나 내부 단열재로 많이 쓰이지만 불에 잘 타고 유독가스가 심해 인명피해를 키우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당시 건물 외벽에 시공돼 피해를 키운 단열재도 발포 폴리스타이렌이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1층 천장 전체가 가연성 물질인 발포 폴리스타이렌과 시멘트로 내장재를 넣은 뒤 석고보드를 덮는 방식으로 시공돼 있었다"면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에도 처음 불이 난 주차장 천장이 유사한 방식으로 시공돼 많은 유독가스를 내뿜었다"고 밝혔다. 가연성 내장재에서 발생한 유독가스가 굴뚝 역할을 한 중앙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대피 도중 질식사한 환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일부 환자들이 침대에 묶여 있어 구조가 늦어졌다는 의혹도 사실로 확인됐다. 수사본부는 숨진 2층 간호사를 대신해 3층과 5층에서 근무한 간호사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수술 환자가 무의식 중에 몸에 연결된 관을 뽑거나 낙상할 우려가 있어 10여 명의 환자를 신체보호대로 침대에 묶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일부 소방관들이 "2층에 있던 18명의 환자들의 결박대를 끊어내느라 1인당 30초~1분 정도씩 시간이 더 걸렸다"고 말한 점을 감안하면 화재 당시 30여 명의 환자가 침대에 결박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화지점 설계도에 아예 없어… 불법 증축이 화재 키웠나

발화지점으로 지목된 응급실 내 환복 및 탕비실은 해당 병원건물 설계도면에는 아예 없던 구조물로 확인됐다. 경찰은 해당 구조물이 불법으로 무단 증축된 것으로 파악하고 화재와의 직접 관련성을 수사할 방침이다.

수사본부와 밀양시에 따르면 불이 난 세종병원 내 불법 증축은 147㎡ 규모다. 1992년 지상 5층 규모로 신축된 후 지난 2006년 1, 4, 5층이 증축됐다. 별도 건물인 장례식장(20㎡)과 부속건물(56.38㎡)을 포함하면 불법 증축 규모는 284.53㎡에 이른다. 세종병원 전체 연면적(1천489㎡)의 10%가 불법 증축된 셈이다. 불법 증축 건수는 병원 5곳, 요양병원 3곳, 부속동 2곳, 장례식장 2곳 등 총 12곳이라고 수사본부는 설명했다.

좁은 면적에 무분별하게 불법 증축해 이어 붙인 건물도 화재 피해를 키운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수사본부에 따르면 밀양시는 지난 2011년 병원 내부 불법 증축 사실을 인지하고 병원에 시정명령과 함께 6년간 3천여만원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이행강제금만 낸 채 불법 건축물을 그대로 유지하며 '배짱 영업'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불법 증축된 부분에 대해 병원과 밀양시 관계자를 조사한 뒤 입건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화재 직후 정전이 인명피해 키웠나

수사본부는 화재 직후 발생한 정전으로 인명피해가 커졌는지 여부도 수사 중이다. 정전으로 엘리베이터 작동이 멈추면서 사망자가 발생한데다 인공호흡기가 꺼지면서 숨을 거둔 중환자들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서다.

수사본부에 따르면 1층 엘리베이터에서 발견된 6명의 사망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탈출을 시도하다 정전으로 나오지 못하고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엘리베이터는 정전 직후 정지해 1층에서 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1층에 진입한 소방관이 엘리베이터 문을 강제로 열고 내부에서 6명의 희생자를 발견했다"고 했다.

정전으로 인공호흡기가 꺼졌을 가능성도 있다. 수사본부에 따르면 사망자 38명 중 34명은 코와 목 등 호흡기 그을음이 관찰됐다. 그러나 4명은 호흡기에서 전혀 그을음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중 3명은 3층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호흡을 하고 있었다고 수사본부는 밝혔다. 수사본부는 이들이 유독가스를 마시기 전에 인공호흡기가 꺼져 숨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세종병원에 설치된 비상용 발전기는 정전이 일어나면 자동으로 가동되는 방식이 아니라 수동으로 작동시키는 방식이었다"며 "감식 결과 병원 뒤쪽에 있던 비상용 발전기에는 작동된 흔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사망원인을 밝히고자 28일 이들 4명에 대해 부검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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