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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부마항쟁 진압에 공수부대 불법 투입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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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1공수 2대대 명령…법절차 무시한 채 마산에 동원

1979년 10월 '유신체제'에 항거해 일어난 '부마민주항쟁'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법절차를 무시한 채 마산 지역 시위진압을 위해 공수부대 투입을 지시한 사실이 39년 만에 드러났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20일 부산과 마산, 창원 등 경남 일대에서 박정희 유신체제에 반발해 일어난 학생과 시민의 민주화 투쟁이다.

특히 부마민주항쟁은 진압방식 등과 관련한 박정희 정권의 내부 갈등을 유발해 유신체제가 '10'26' 사태로 몰락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8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국무총리 소속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의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1979년 10월 18일 박찬긍 계엄사령관에게 공수특전여단 1개 대대를 마산으로 이동해 제39사단을 지원하라는 내용 등 15가지 지시사항을 내렸다.

위원회가 조사과정에서 확인한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하명사항'이라는 문건에는 공수부대의 마산 지역 투입 명령을 비롯해 '난동 군중 타격'시에는 초기 제압하라는 지시와 대학교의 휴교가 불가피하다는 판단 등이 담겼다.

이에 따라 부산 계엄사령부에 배속돼 있던 제1공수특전여단 제2대대 소속 병력 235명은 마산으로 출동했고, 이후 실제로 시위 진압에도 가담했다.

정부는 그해 10월 16일부터 부산지역 대학에서 시작된 학생 시위가 거리로 번지며 시민 참여가 급속히 불어나자 18일 자정을 기해 부산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하지만 부산과 달리 마산에는 계엄령은커녕 군부대가 주둔하며 시설 경비 등을 맡는 '위수령'조차 내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산에 위수령이 내려진 것은 공수부대가 배치되고서 나서 이틀이 지난 20일 정오였다.

마산에 군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법령에 따라 경남도지사의 병력출동 요청이 있어야 했는데, 이 같은 요구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위원회는 결론을 내렸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이를 거듭 지적하며 "계엄사령관이 임의로 자신의 배속 부대를 계엄지역이 아닌 마산으로 이동시킨 것은 제1공수특전여단의 마산 도착 시각이 위수령에 따른 병력출동 전이었기에 더욱이 명백한 위법 행위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위원회는 1979년 10월 18일 계엄사령부가 합동수사단을 꾸려 부마민주항쟁 시위자를 조사하면서 그 배후로 북한과 당시 유력 정치인이었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등을 연계시키려고 7개 주요 사건을 선정해 수사했던 사실도 파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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